한 달에 100개 안팎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가 생겼다 사라지는 서울 성수동에서 요즘 가장 핫한 곳은 명품이나 아이돌 굿즈 매장이 아닌 빵집 팝업이다. 지난달 30일 문을 열었는데 영업 전부터 수백 명이 대기하는 건 기본이고 3시간 넘게 기다렸다 빵을 샀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구독자 361만 명을 보유한 경제 유튜버 ‘슈카월드’가 직접 연 빵집이라는 화제성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건 가격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3000∼4000원대에 판매하는 소금빵과 바게트를 이곳에선 990원에 팔고 있다. 식빵(1990원), 단팥빵(2930원) 등도 일반 빵집보다 훨씬 싸다. 슈카는 “빵값이 미쳐 날뛰고 있다. 가격이 낮은 빵을 만들면 시장을 흔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팝업을 기획한 의도를 밝혔다. 슈카의 지적대로 국내 빵값은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밀가루, 원유, 설탕, 계란 등 원재료 가격이 뛰면서 빵값은 최근 5년간 38% 넘게 올랐다.
▷990원 소금빵이 가능한 비결에 대해 슈카 측은 버터, 달걀 같은 고가 원재료를 최소화하고 주요 원재료를 산지에서 직송해 유통비를 낮췄으며 빵 모양과 포장을 단순화해 비용을 절감했다고 한다. 요즘 가성비를 앞세워 인기를 끌고 있는 지하철 역사 내 ‘1000원 빵집’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빵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지도와 홍보력을 가진 유명 유튜버의 박리다매가 아니면 불가능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비싼 인건비와 임대료는 물론이고 복잡한 제빵 원재료 유통구조를 무시한 채 일반 빵집들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만들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 국내 제빵 제조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식품 제조업 평균의 3배를 웃돈다. 주요 원료 대부분을 수입하는데 수입업체, 도매상, 소매납품업체로 이어지는 유통 단계마다 마진이 붙다 보니 동네 빵집은 원재료를 저렴하게 공급받기도 힘들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급등했던 국제 밀 가격이 하락해도 국내 빵값은 그대로인 배경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시장을 과점한 탓에 동네 빵집들이 이를 기준 삼아 가격을 정하기도 한다. 임대료 비중도 높아 같은 브랜드 빵이라도 목 좋은 상권에선 비싸게 판매된다.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모두 더해져 한국의 빵플레이션이 유독 심해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이를 해결하겠다며 제빵업 유통구조 개선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슈카가 쏘아올린 빵값 논쟁이 단순한 가격 실험을 넘어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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