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석 가린 무장애 구장? 접근권은 배려가 아닌 권리의 문제 [기고/박진용]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1일 1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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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장애인법연구소 소장·법학박사
박진용 장애인법연구소 소장·법학박사
한국 프로야구 누적 관중 수가 12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야구는 성별, 연령 그리고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전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듯하다. 얼마 전 한화이글스 전용 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장애인석 일부를 매트로 가리고 객단가가 높은 특별석으로 전용하다가 적발되면서 비난에 휩싸이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는 대전시 소유 공공체육시설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Free·이하 BF)’ 필수인증시설이다. BF 필수인정시설이란 접근약자가 차별 없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편의증진법’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구단은 “장애인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 사과하고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모든 분들의 관람 친화적인 구장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며 대표이사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헌법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접근의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장애인에게 존엄의 실효적 보장을 위한 법적장치는 완전하지 않았고, 물리적 장벽에 대한 해체를 요구하게 되면서 새로운 권리 개념인 ‘이동권’의 개념을 고안했다.

애초의 이동수단 보장 요구로서의 이동권은 초고령화 사회, 위험사회화 경향, 양극화로 인한 정보격차가 발생하게 되면서 차별없는 정보접근가능성, 인간적인 생활환경의 확보를 포함하는 권리인 ‘접근권’으로 진화됐다. 장애인의 한정적 권리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접근가능성으로, 문화국가에서 고려해야 할 교육· 문화 및 정보 접근성으로 점차 그 내용이 확대되고 있다. 문명사회의 실질척 평등은 문화적 기회의 평등이 그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의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 약속이 담긴 사과문. 출처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한화 이글스의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 약속이 담긴 사과문. 출처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한화 이글스의 사과문에 포함돼 있어야 할 내용은 ‘세심한 배려와 사회적 돌봄의 실천’에 대한 약속이 아닌 접근약자의 권리 침해에 대한 사실, 재발방지를 위한 방법과 절차, 잠재적 접근약자인 모든 국민에 대한 책임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했다. 사실관계가 왜곡된 사과란 책임의 회피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남의 권리를 빼앗아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보통 형벌로서 규율되지만 위와 같은 경우 마땅한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증진법’의 벌칙규정을 보면 접근권 침해의 경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을 뿐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는 차별의 고의를 가지고 지속·반복적으로 행위를 한 경우와 보복적으로 행위에 한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 접근성 보장을 위한 위한 법률이 사실상 ‘합법적 차별을 용인하는 규범’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처벌의 목적은 정향(定向)성과 위법을 억제하는데 있다.

세 번째, BF 인증을 받았다 할지라도 규범과 현실의 심각한 괴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 지속적인 검증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Barrier is free’라는 본말전도가 이뤄져 규범의 보호 목적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접근권의 실질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점자표기를 통해 상품의 설명을 이해하고, 수어 통역으로 문화 예술을 감상하고, 유명 맛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있고, 운동경기장에서 힘껏 응원을 펼칠 수 있는 것처럼 접근약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느끼는 사소하고 소박한 것들이다. 법이 정한 접근성에 대한 침해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돌봄의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사과로 인정되고, 작은 벌금으로 법적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사실상 장애물 있는 환경인증이 묵인된다면 이번과 같은 부끄러운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사람의 신체적 차이가 결코 장벽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불편함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의 구축이다. 현존·명백한 사회적 불리함은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 헌법이 예정한 일반적 행동자유의 영역에서 모든 국민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그들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속으로 동화 통합되는 것이 접근권의 실질이자 사회국가의 목표라 생각한다.

접근권에 대한 전 생애적 인식과 이해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존엄에 대한 척도는 높아지게 될 것이다. 권리의 침해는 결코 배려를 잊은 무례가 될 수 없으며 재발 방지의 시작점은 ‘진정한 사과’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 있다. 우리는 모두 접근약자로 태어나 결국 접근약자로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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