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규진]민감국가 지정 ‘데자뷔’… 구금사태 후속조치 속도 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1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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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규진 정치부 기자
우리 국민 317명에 대한 미국 이민 당국의 대규모 구금 사태는 6개월 전 민감국가 지정 논란과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두 사건은 동맹인 미국 정부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3월 정부는 미 에너지부(DOE)가 4월 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하려는 동향을 재미 한인 연구자로부터 전달받았다. 정부는 이 ‘비공식 제보’를 미국 행정부를 통해 공식 확인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정부가 이번 한국인 구금 사태를 인지한 시점도 국토안보부(DHS),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미 당국이 조지아주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한 직후였다. 미 이민 당국은 수개월간 내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투자 중인 우리 기업의 출장 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면 동맹 채널을 통해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민 당국은 헬기와 장갑차를 동원해 토끼몰이하듯 단속을 벌였다.

에너지부와 국토안보부가 한미 소통 사각지대에 있는 이유도 한몫했다. 소통 채널이 겹겹이 구축돼 있는 백악관, 국무부 등은 민감국가 지정이나 한국인 단속에 대해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한 대미 소식통은 “ICE가 불법 이민자 단속, 추방 실적 쌓기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이번 사태가 ‘한국 길들이기’와 같은 고도의 정무적 판단의 결과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주의’가 잇따라 한미 관계에 악재로 돌출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중국 견제나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 등 한미 양자 현안을 넘어서는, 현 트럼프 행정부의 대내외 우선순위 정책들이 언제든 한미 동맹 리스크로 비화될 수 있음을 이들 두 사례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인 구금 사태가 논란이 되자 “외국 기업이 제조업 분야 인재를 신속하게 미국에 데려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동맹을 달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이민 당국은 여전히 원칙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反)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국경 차르’ 톰 호먼은 이후에도 제2, 제3의 한국인 구금 사태가 계속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민감국가 지정 역시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핵심 배경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감국가 지정 이면에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 317명이 11일 석방되면서 비교적 빠르게 사태가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번 사태는 한미 동맹의 핵심 현안인 우리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 안정성 등과 직결돼 있다. 다시 불거지면 언제든 한미 관계를 악화시킬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는 만큼 속도감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 야망과 반이민 정책이 충돌하는 지점을 집중 공략해 한국인에 대한 비자 제도 개선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감국가 지정 논란이 잠잠해진 뒤 정부 당국자들은 “언론에서 위험성을 과도하게 부풀린 측면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민감국가 지정 해제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한국인 구금 사태는 많은 우여곡절에도 한국인 전원 석방을 통해 한고비를 넘겼다. 후속 조치는 민감국가 지정 논란 때와는 달라야 할 것이다.

#미국 이민 당국#한국인 구금#민감국가 지정#한미 동맹#대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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