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예나]영어 ‘레테 과외’까지 있는데 적발 23곳뿐이라는 교육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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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최근 교육부가 최초로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728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23곳(3%)이 레벨 테스트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학부모들 중 이 숫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유 레테’라고만 검색해도 ‘내년 X년 차 영유 입학 레테 과외선생님 구한다’는 글이 쏟아지는데 정부는 실태 파악도 못 하고 있다. 교습 과정 중간에 시험을 보는 학원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교육청 판단에 근거한 조사라니 영재 판별 검사 등을 택하는 곳도 피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레벨 테스트 기반의 영유아 학원 규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해서인지 교육부는 “레벨 테스트 보는 영어유치원을 계속 점검하겠다”고 했다. 영유아 대상 하루 40분 이상 교습을 금지하게 발의된 법안 등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그래도 영어유치원을 보낼 학부모를 막기는 어렵다. 모든 사교육의 출발이 그렇듯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하면 말이다. 교육부 눈치 때문인지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영어유치원은 레벨 테스트를 보지 않고, 3·4세가 다니는 같은 계열 기관 졸업생에게만 반을 배정하기로 했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4세 고시 막으려다 2세 고시까지 생기겠다”는 말이 나온다.

영어유치원에 대한 부모들 의견은 엇갈린다. 한때 매일 오후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에 가슴이 조여온 적이 있다. 영어유치원 담임교사는 “아이가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우는데 달래지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늘 “선생님이 오늘 나 잘했대?”라며 눈치를 살피던 아이는 어느 날 “선생님이 한국말 한다고 소리 질러 무섭다”며 울었다. 바로 영어유치원을 그만뒀다.

물론 영어유치원을 잘 다니는 아이도 많다. 새로운 언어에 호기심이 많아 빠르게 영어를 학습해 국제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마다 받아들이는 속도가 다르니 부모의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아프게 배웠다.

단속이나 입법보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영유아 대상의 바람직한 영어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 언어학자, 심리학자, 뇌과학자 등과 연구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영어는 초3 때 처음 배우므로 유치원에서 학습 형태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라고만 한다. 하지만 수요가 많아 상당수 일반 유치원에서도 영어 수업을 한다. 부모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느끼니 영어유치원을 보내려고 기저귀 찬 아이에게 과외 선생님까지 붙인다.

영유아 시기에 영어로 스펠링을 외우고 에세이를 쓰게 하는 방식의 과도한 영어 교육이 아이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정부가 연구해야 한다. 이른 영어 교육의 장점과 함께 부작용도 명확하게 설명해 줘야 모든 부모가 무턱대고 영어유치원을 선택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사교육을 무조건 막겠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그 대신 국가가 문제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설득하고 필요한 것은 지원해 주면 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국가가 제대로 연구해서 전문가가 아이의 속도에 맞춰 세금으로 가르치면 어떤 부모가 싫어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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