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시급히 풀어야 할 이산가족의 한[기고/김철수]

  • 동아일보

코멘트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러나 우리에게 광복은 여전히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방의 환희는 곧 남북 분단이라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분단과 이산가족 문제를 낳았다.

한반도의 분단은 단순한 국토의 경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삶과 가족을 갈라놓은 인간적 비극이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는 분단의 상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어르신이 가족의 생사 확인과 재회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남북 간 최초의 공식 접촉으로 기록되는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이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단절된 가족의 만남을 위한 인도적 차원의 순수한 호소였다. 이 제안을 계기로 회담이 추진됐고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의 교환, 대면·화상 상봉, 서신 교환 등 소중한 성과가 이어졌다.

당시의 대화는 체제 간 경쟁이나 정치적 계산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문제 해결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과 북은 서로를 대등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회담장에 마주 앉았고, 이는 이후 남북 교류·협력의 기초가 됐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분단 극복의 상징적 첫걸음이자 진정한 평화를 향한 출발점임을 보여 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70년 넘는 세월 동안 보고 싶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듣고 싶은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어르신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4427명에 달한다. 그중 생존자는 3만5653명뿐이다. 그 가운데 80세 이상 고령자는 2만3808명으로 전체의 67%에 이른다. 우리에게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더 이상 ‘추후 논의할 과제’가 아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과 평화 공존을 위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남북 간 신뢰가 쌓인다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교류와 협력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남북 협력은 단순히 상봉 재개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상호 공존을 위한 토대를 다져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지금까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그리고 각국 적십자사가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통해 남북 대화와 협력의 진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제안은 냉전의 긴장 속에서 인도주의가 어떻게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소중한 역사였다. 오늘날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사안이 아닌 사람의 문제다. 그 고통을 직시할 때 남과 북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함께 나아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진정한 평화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모두가 그 실천의 발걸음을 다시 내디뎌야 할 때다.

#광복 80주년#남북 분단#이산가족 문제#남북적십자회담#인도적 교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