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가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인성교육 과목을 대폭 신설하기로 했다. 현행 예과 2년+본과 4년제를 6년제로 통합해 시행하는 2027년 1학기부터 현행 강의식 인성 교육 강좌를 팀 스포츠 수업, 독서 토론, 의료 취약지역 실습 과목 등 체험형으로 확대 개편해 공감과 소통 역량을 기르고 포용과 승복의 가치를 깨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의대의 인성교육 강화 방안은 1년 7개월을 끌었던 의정 갈등에서 의사들이 문제 해결 역량을 보여주기보다 왜곡된 집단주의 문화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자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의정 갈등은 무모한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의사들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대치 국면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 특히 중증, 응급 환자까지 버려둔 채 파업하고, 일부 전공의와 학생들이 집단행동 불참자를 조리돌림하면서 사회적 비난을 자초한 것이 사실이다. 서울대 의대 학장이 “서울대 의대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무조건 따르라는 카리스마형이 아니다” “의정 사태를 보며 희생과 배려를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의대 교육은 의사로서 품성이나 자세보다 지식과 기술 전수에만 치중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한국 의료가 주요 건강 지표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동안 의사들에 대해선 ‘소통 부족’과 같은 환자와 가족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의사가 모든 직업군 중에서 신뢰도 1위인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과학자에 이은 2위다. ‘3분 진료’를 강요하는 제도 탓도 있지만 인성교육에 소홀한 의대 커리큘럼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성은 강의 한두 과목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수련 전 과정에서 의사로서 품위와 민주적 리더십을 배울 수 있도록 학습 생태계 전 과정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난 의정 사태는 의료 현장의 실상을 대중의 언어로 알리고 여러 직역과 소통하며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의료 전문가의 리더십 공백을 절감하는 계기였다. 역대 정부의 의료 개혁이 별 성과 없이 끝난 것도 현장을 아는 의사들이 주도하기보다 개혁의 대상에 머무른 탓이 크다. 이제 병 잘 고치는 의사 배출로 만족할 수 없다.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두루 갖춘 인재 양성이 의료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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