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운]중국 패권주의 돕는 미국 우선주의 역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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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국제부 차장
김상운 국제부 차장
“최근 모디와 시진핑, 푸틴의 친근한 모습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인도를 적들(중국·러시아)의 편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부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4일자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정상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짚으며 우려를 표시한 것. 주요 외신들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저항하는 ‘반미(反美) 결집’의 상징적 장면으로 해석했다.

트럼프와 브로맨스를 자랑하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제 발로 시진핑과 푸틴에게 찾아가게 만든 건 미국의 관세 폭탄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제재하겠다며 5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매겼다. 그러나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냉전시절 비동맹 운동의 수장을 자처한 인도는 굴종보다 자주를 택했다. 인도 외교부는 “인도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 결정을 내릴 주권적 권리가 있다”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추진된 미국-인도 민간 핵협정이 대표적이다. 1962년 이래 최근까지 중국과 국경지대에서 무력 충돌을 빚은 인도도 미국 주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2007년 가입해 대중 견제에 동참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쿼드의 한 축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적전 분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군사 수단까지 동원해 쿼드보다 한층 강력한 대중 견제 수단인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체)도 불안하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해 한 행사에서 “미국 핵잠수함은 대단히 중요한 상품인데, 우리가 가장 필요한 때 ‘왕관 보석’ 같은 자산을 왜 (호주에) 주느냐”고 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오커스 협정에 따라 2032년까지 핵잠 3척을 호주에 판매키로 했다.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전략자산인 핵잠을 호주에 제공키로 한 것. 하지만 핵잠 생산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미 국방부는 오커스 협정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호주는 발칵 뒤집어졌다. 맬컴 턴불 전 호주 총리는 “우리는 30억 달러를 쓰지만, 핵잠을 실제로 인도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며 “오커스는 호주에 불공정한 끔찍한 협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동맹 간 균열로 이어지면서 중국에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압박에 직면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이를 틈타 한미 간 균열을 노리고 있다. 17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일방적 강압이 만연한 상황에서 두 나라가 공동으로 무역 보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요한 건 북한의 핵 위협에 이어 북-중-러가 결집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무리한 통상 요구엔 강한 목소리를 내되, 한미일 안보 협력은 강화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미국 우선주의#인도-중국-러시아 관계#상하이협력기구#관세 압박#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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