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인 부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10대 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인 김 회장의 재산은 95억 달러(약 13조 원)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다시 제쳤다. 사모펀드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김 회장은 자신의 영문 이름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를 따 한국형 사모펀드 운용사를 세웠다. 20년이 흐른 지금 MBK가 기업을 사고팔며 굴리는 자금은 약 42조 원, 투자한 기업의 매출을 더하면 68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아시아 사모펀드의 대부’로 꼽히는 김 회장의 명성이 요즘 흔들리고 있다. MBK가 인수한 기업이 잇따라 경영에 실패하거나, 투자금 회수 후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사례가 속출하면서다. MBK 인수 10년 만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으며 줄폐업을 앞둔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자금의 절반 이상을 금융권에서 빌렸는데, 이를 갚기 위해 알짜 점포들을 줄줄이 매각해 마트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을 당하면 뼈를 깎는 자구 노력부터 하는 게 상식이지만, MBK는 기다렸다는 듯 홈플러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신청 직전까지도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단기 채권을 판매하며 피해를 키웠다. 남의 돈으로 기업을 비싸게 사들인 뒤 자산 매각으로 배를 불리고 실적이 나빠지면 나 몰라라 하는 ‘먹튀 경영’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파문이 커지자 김 회장은 사재 출연을 약속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실질적 조치는 전무하다.
▷게다가 MBK가 2019년 인수한 롯데카드에서는 외부 해킹 공격으로 고객 297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이 중 28만 명은 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CVC(카드 뒷면 3자리 숫자)까지 빠져나가 부정 결제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MBK는 2022년 롯데카드를 3조 원에 팔겠다고 내놨다가 실패했고, 최근엔 몸값을 2조 원으로 낮췄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매각에 정신이 팔려 보안 투자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카드는 5년간 보안 내부 감사를 단 한 차례만 했고, 정보보호 투자액도 3년 새 15% 줄였다.
▷MBK는 해외 기업 사냥꾼에 맞설 토종 사모펀드를 키워야 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정부도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이고 ‘먹튀’한 론스타 등에 당하지 않겠다며 2005년 법을 만들어 한국형 사모펀드 육성에 나섰다. 하지만 홈플러스와 롯데카드 사태가 연이어 불거지자 토종 사모펀드 맏형인 MBK가 이 정도로 무책임한 줄 몰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를 악마화하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단기 차익만 좇는 사모펀드의 탐욕에 제동을 걸 장치는 긴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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