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자원(HR) 분야 중에서도 인공지능(AI)이 가장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곳은 채용 과정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90% 이상의 기업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채용지원서를 걸러내거나 순위를 매기고 있으며 88%는 지원자를 선별하는 초기 단계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일례로 글로벌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는 미국의 채용 기술 기업 ‘하이어뷰(HireVue)’의 AI를 활용해 5만 시간을 절약하고 10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기업들이 AI 평가 도구를 도입하면서 높은 효율성과 품질을 기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는 AI의 문제점이 있다. AI가 실제 평가 과정에서 지원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 연구팀이 이를 입증했다. 연구팀이 연구실과 실제 업무 현장에서 다양한 평가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구직자들은 AI의 평가를 받는다고 여길 때 본인의 분석적 능력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반면 공감, 창의성, 직관 같은 인간적 특성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시 말해 지원자들은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는 세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인재 특성이 왜곡된다. 구직자들은 AI가 분석적 역량을 선호한다고 믿어 혁신적 사고나 감성 지능이 뛰어난 인재임에도 규칙만 따르는 분석가처럼 자신을 표현한다. 둘째, 평가 도구의 타당성이 훼손된다. 지원자들이 전략적으로 답변함에 따라 AI가 지원자의 진짜 역량이 아닌 AI가 중요시할 것이라고 추정되는 부분만 측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의도하지 않은 획일화가 이뤄진다. 구직자 대부분이 분석적 특성을 선호하면서 인력풀이 균일해지고 조직 내 관점의 폭이 제한된다.
특히 AI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설정한 유럽연합(EU)의 ‘AI법(AI Act)’이 시행되면 획일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AI법은 투명성을 강조하며 의사결정에 AI를 활용하는지 여부를 공개하게 한다. 이에 따라 구직자들이 자신이 AI로부터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스스로 행동을 바꿀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최근 IBM과 힐턴 등 채용뿐 아니라 내부 승진 시스템에도 AI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기업은 AI가 직원들로 하여금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유도하지는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이런 AI 평가의 부작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연구진은 단순히 AI로 평가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특히 AI가 창의성, 감성 지능, 직관적 문제 해결 능력 등 다양한 특성을 중요하게 평가할 수 있음을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직관적이거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해 취업에 성공한 지원자 사례를 제시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AI 기반 채용에 편향이 없는지 정기적인 감사도 필요하다. 뉴욕시는 ‘지방법률 144(Local Law 144)’를 제정해 기업들이 AI 기반 채용에 관해 매년 편향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이어뷰는 최근 인종 및 성별 편향에 관한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런 인구 통계적 편향뿐 아니라 구직자들의 답변이 점점 더 획일화되고 있지는 않은지, 분석적 표현이 과도하게 많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AI뿐만 아니라 사람이 평가를 함께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평가도 해법이 될 수 있다. 세일즈포스는 기술을 활용할 뿐 아니라 사람도 지원서를 검토한다고 명시한다. 엔비디아와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도 최종 평가와 의사결정은 반드시 인간이 수행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하이브리드 평가도 지원자들이 분석적 역량을 강조하는 경향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AI를 활용해 채용에서 인간의 편향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편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해결책이 AI를 포기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AI에 따른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사전에 고려해 그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용뿐만이 아니다. 조직의 많은 의사결정 과정에 AI가 활용됨에 따라 AI가 다양한 영역에서도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인사 전략의 중심은 결국 지표가 아닌 ‘사람’이 돼야 조직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디지털 아티클 ‘AI 면접이 지원자의 행동을 왜곡한다’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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