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자리 맡으려 사다리까지 동원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4층 대기공간 책상 위에 사다리와 수레 등이 올려져 있다. 13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앞서 정부 부처 등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제신문 제공
13일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소환하는 구태가 여야 가릴 것 없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1일 현재 12개 상임위원회에서 기업인 166명을 증인으로 채택해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159명을 이미 넘어섰다. 증인이 확정되지 않은 상임위가 5곳이나 돼 더 늘어날 수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야당 때처럼 기업 총수를 국감 증인으로 마구잡이 신청하지는 말자”고 했고, 국민의힘 지도부도 “무분별한 증인 채택을 자제하자”고 했지만 빈말로 그친 것이다.
2020년 63명이던 기업인 증인은 2021년 92명, 2022년 144명 등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회장 등 기업 총수를 비롯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특히 최 회장은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앞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의 의장인데, 행사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대신 국감장에 서야 할 상황이 됐다. 통신업계에선 이동통신 3사 CEO가 모두 불려 나오고, 건설업계에선 10대 건설사 중 8개 회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한 회사에서 대표와 임원이 줄줄이 소환되고, 여러 상임위에서 중복해서 불러 ‘겹치기 출석’을 해야 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국정운영 전반을 감시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현안이 있는 기업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들을 순 있다. 문제는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소환한 뒤 장황한 훈시를 늘어놓거나 호통을 치는 ‘망신 주기’ ‘군기 잡기’로 흐른다는 점이다. 일정이 촉박한데도 과도하게 많은 증인들을 불러놓고 병풍처럼 세워 놓은 경우가 허다했다. 기업인을 일단 증인으로 채택한 뒤 나중에 명단에서 빼주는 대가로 기업 측에 지역 민원을 요구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숨 가쁜 글로벌 경쟁 속에 분초를 다투는 기업인들을 무작정 불러 몇 시간씩 대기시키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낭비다. 경영 활동에 지장을 주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을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 기업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회가 내수 불경기와 관세 압박 등 안팎으로 시달리는 기업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언제까지 이렇게 발목 잡기만 골라서 할 것인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