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다시 ‘쥐와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4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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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쥐가 이겼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2년 전 ‘쥐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미국 뉴욕시가 임명한 방역 책임자 ‘쥐 차르’가 사임했다는 내용이었다. 뉴욕에 서식하는 쥐는 300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질식 가스와 피임약까지 살포하며 총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가디언은 “쥐가 차르를 폐위시켰다”는 표현까지 썼다.

▷‘쥐의 왕국’으로 불리는 뉴욕처럼 최근 서울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쥐 목격담’이 쏟아진다. ‘서울의 심장’ 광화문광장에 쥐가 출몰해 구청이 긴급 방역에 나서는가 하면, 한 채가 수십억 원인 강남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도 “대낮에 쥐를 봤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 접수된 쥐 민원은 2181건으로 3년 전의 2배 이상이 됐다. 어느새 도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불청객이 된 것이다.

▷올해 초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주요 대도시 16곳 중 11곳에서 쥐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미국 워싱턴은 10년간 증가율이 390%에 달했다. 일본 도쿄에서도 이달 초 신주쿠를 걷던 외국인 관광객이 쥐에 물리는 등 피해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파리, 로마 등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도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기후 변화로 도시가 따뜻해지면서 번식에 유리한 환경이 되고, 하수관 등 인프라 노후화로 서식지와 이동 통로가 늘어난 영향이다. 설상가상으로 천적도 사라졌다. 먹을 게 넘치는 도시에서 들고양이는 천적이 아니라 쥐와 음식물 쓰레기를 나눠 먹는 이웃이 됐다.

▷한국에선 3년 전 여의도 한복판에서 쥐 20여 마리가 쓰레기봉투를 파먹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다. 1970년대 ‘쥐잡기 운동’으로 박멸된 줄 알았던 쥐가 다시 활개 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쥐 꼬리를 모으거나 쥐약을 살포하던 시절로 돌아가긴 어렵다. 쥐를 잡아 꼬리를 자를 만큼 용감한(?) 국민도 많지 않고 살포한 쥐약이 자칫 반려견, 반려묘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어서다. 서울시는 23일 대안으로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 쥐덫’을 설치하기로 했다. 쥐가 먹이를 먹으러 들어오면 문이 닫히고 경보가 방제센터로 전송돼 수거하는 방식이다.

▷쥐가 갑자기 많이 보이는 건 놀라운 번식력 때문이기도 하다. 한 쌍의 쥐는 출산을 거듭하며 1년 만에 최대 1250마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서울도 머잖아 뉴욕처럼 매년 수만 건의 쥐 출몰 신고에 시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쥐 대응의 ‘3원칙’은 굶기고, 막고, 잡는 것이다. 쥐들에게 ‘뷔페 식당’ 역할을 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신속하게 치우고,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노후 하수관 틈을 막는 것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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