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 있었던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신을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5일 한덕수 전 총리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에서 두 번 조사받고, 변호사비 들고, 이 아까운 시간에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엄청난 손해라고 했다. 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가 끝난 뒤 대통령실에 도착한 그는 윤 전 대통령 면전에서 계엄을 말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 놓고 그로 인해 당연히 받아야 할 조사를 받는다고 ‘손해’ 운운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가 어떤 손해를 입었든 불법 계엄으로 국민이 입은 손해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겪은 심각한 갈등과 분열, 그로 인해 치러야 했던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계엄을 막을 여지가 없었다며 항변하듯 ‘나도 피해자’, ‘고초를 겪고 있다’, ‘억울한 심정’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오죽했으면 재판장이 “이해하기 힘들다”며 국정 운영에 관여한 최고위급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게 적절하냐고 질책했겠나.
박 전 장관을 포함해 대통령실에 있었던 국무위원 누구도 윤 전 대통령을 막지 않았다. 그러고도 일부는 계엄에 반대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다 CCTV 영상으로 거짓이 드러났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그날의 진실을 털어놓고 국민 앞에 사죄할 법도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그는 현직 장관 시절이던 지난해 “(젊은이들이)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다”며 전세 사기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려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
국무위원들이 계엄을 선포하러 가는 윤 전 대통령을 바라만 보던 그 순간에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후 목격한 민주주의의 퇴행은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국무위원으로서 계엄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최소한의 염치라도 보이는 게 도리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신이 법정에 불려 나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인물이 국민에게 무한책임을 져야 할 한 나라의 장관이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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