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범죄로 삶 무너졌던 19세
범죄피해자지원센터서 도움 손길
“오랜 시간 돌봐줘서 사회 복귀 가능”
용돈 모아 센터에 500만원 전달
9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에서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주최로 열린 범죄 피해자 회복 응원을 위한 연말 행사 ‘낭만채움’에서 김갑식 이사장(오른쪽)이 후원자 장주희(가명) 씨에게 시상하고 있다.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제공
“지금도 어딘가엔 분명 저희 같은 피해자가 있을 거예요. 그분들을 위해서는 이제 저희가 도움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년이면 스무 살이 되는 장주희(가명) 씨는 이달 9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검 1층에서 열린 서울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사장 김갑식) ‘낭만 채움’ 연말 행사에서 그동안 정성껏 모은 500만 원을 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희 씨는 이날 100여 명의 피해자와 가족 앞에서 “누군가의 작은 도움들이 모여 우리 가족이 우뚝 서는 기적을 경험했다”며 “저와 같은 기적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한다”는 편지를 낭독했다. 진심 어린 고백에 행사장 곳곳에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희 씨가 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년 전인 다섯 살 때였다. 당시 언니 지수(가명) 씨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며 가정은 순식간에 풍비박산 났다. 남겨진 자매와 어머니의 삶은 무너져 내렸지만, 센터는 그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15년 동안 묵묵히 동행했다. 주희 씨는 “어릴 적부터 언젠가는 이 고마움을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해 왔다”며 “성인이 되기 한 달 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미소 지었다.
자매의 어머니는 2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15년 전은 정말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자매를 데리고 홀로서기를 결심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어머니는 “여러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안 좋은 기억만 끄집어낼 뿐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부지검을 통해 처음 센터를 알게 됐을 때도 ‘당신들이 뭘 해줄 수 있느냐’며 악을 썼는데, 포기하지 않고 우리 가족을 오랜 시간 보듬어 줬다”고 말했다.
딸에게 가정폭력을 저지른 지수 씨의 아버지는 당시 실형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자녀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법원에서 전부 개명했다. 딸의 기부를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과 동행해 준 센터 덕분에 무너졌던 우리 가족이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경험했다”며 “이제는 딸들에게 너희와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어머니 역시 세 남매를 키우면서도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팔며 센터에 지속해서 기부해 왔다고 한다.
김갑식 센터 이사장은 주희 씨의 사례가 범죄 피해자와의 ‘지속적인 동행’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15년간 심리치료와 각종 프로그램, 모임 등을 함께하며 일상을 되찾는 걸 도왔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은 “사건 발생 직후의 신속한 대처도 중요하지만, 사고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곁을 지키느냐가 회복의 핵심”이라며 “지원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다른 피해자들의 회복에 동참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 점이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력과 예산 등의 문제로 모든 피해자가 장기적인 지원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센터는 피해자가 연주하는 음악회를 열거나 함께 김장하고, 정기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 등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임예윤 사무처장은 “센터는 피해자를 잠시 돕고 끝내는 기관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함께 살아가는 기관”이라며 “지속적인 지원이 결국 회복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범죄 피해로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단발적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피해자의 회복 과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피해자의 욕구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다. 그래서 지속적인 동행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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