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등 혐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대기 장소인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정점’으로 조은석 특별검사가 이끄는 내란 특검팀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내란우두머리 등 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지 172일 만에 재구속 기로에 서게 됐다. 2025.07.09 사진공동취재단
“아무도 나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데, 내가 누구를 조종(압박)하겠습니까.”
9일 오후 8시경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구속영장 실질심사 법정. 피의자석에 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런 취지로 최후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이 ‘윤 전 대통령이 다른 피의자의 진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구속 필요성을 주장하자 이에 반박한 것이다. 심사를 맡은 남세진 영장전담판사가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한테 총을 보여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냐’는 취지로 묻자 윤 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 특검-변호인단, 각자 170장 분량 PPT로 맞서
영장심사는 이날 오후 2시 22분 법복을 입은 남 판사가 법정 북쪽의 법관 출입구로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남 판사가 앉은 법대를 기준으로 왼쪽 검사석엔 윤 전 대통령을 이달 5일 직접 조사한 박억수 특별검사보와 김정국 조재철 부장검사 등 ‘내란 특검팀’ 검사 총 10명이 자리 잡았다. ‘체포영장 집행 방해’ 혐의 수사를 전담해온 박창환 총경을 비롯한 파견 수사관 여럿도 이날 영장심사에 참여했다. 반대편 변호인석에는 윤 전 대통령 측의 김홍일 송진호 배보윤 채명성 최지우 김계리 유정화 변호사가 앉았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최소 6개 혐의에 대해 설명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남 판사 앞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총 178장 분량의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법리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변호인단도 167장 안팎 분량의 PPT 자료를 토대로 특검이 제기한 혐의에 대해 반박을 이어갔다. 이어 남 판사가 특검, 변호인단과 윤 전 대통령 각자에게 궁금한 부분을 묻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영장심사가 길어지자 남 판사는 저녁 식사(1시간)와 휴식(10분)을 위해 두 차례 휴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경호원들이 인근에서 사 온 나물 도시락으로 식사했다.
영장심사에선 윤 전 대통령이 올 1월 수사기관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라고 경호처 간부들에게 지시했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됐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당시 박종준 경호처장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 등에게 “관저 안으로 수사관들을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적법한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불법 행위를 지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윤 전 대통령이 지시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내란죄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서 ‘영장 쇼핑’을 통해 불법 영장을 받은 것이므로, 이를 경호처 직원이 막아선 건 정당한 경호 행위란 주장을 이어갔다.
● 특검 “말 맞추기 우려” vs 尹 “정치적 목적에 의한 수사”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수사 필요성이 있는지를 두고도 양측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특검은 재판부에 제출한 300쪽 분량의 의견서를 통해 현재 윤 전 대통령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내는 등 ‘북풍 몰이’를 시도했다는 외환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핵심 수사 대상인 군 관계자들과 ‘말 맞추기’를 할 위험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직에서 물러나 아무런 힘도 없는데 증거를 인멸하고 진술을 번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잘못된 수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영장심사를 마친 윤 전 대통령은 교정당국이 마련한 호송차를 타고 경기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했다. 앞서 2017년 3월 영장심사를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청사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에게 이 같은 ‘전직 대통령 예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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