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두 번 살린 서울고법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6월 14일 0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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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항소심 무죄 이어 파기환송심 연기… 다른 재판도 중지될 듯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6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재판부의 기일 추후 지정 결정을 비판하는 의원총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6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재판부의 기일 추후 지정 결정을 비판하는 의원총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대선 전 12개 혐의로 5개 재판(표 참조)을 받던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리스크가 걷히고 있다. 서울고법은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재판을 추후 지정(추정)하며 이 대통령 국정 수행에 날개를 달아줬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李 대통령 재판 연기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과 대장동 등 개발 비리 의혹 재판이 이 대통령 임기에는 사실상 중단된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6월 9일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기일 변경 및 추정 조치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 또한 6월 24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대장동·백현동·위례 개발 비리 의혹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의 공판기일을 추정했다. 추정은 특별한 사정 등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을 때 다음 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일단 미루는 절차다. 담당 재판부의 별도 결정이 있을 때까지 재판은 속행되지 않는다.

두 재판부는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을 추정한 근거로 헌법 제84조를 들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소추’를 검찰 기소 외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할지를 두고 대선 전부터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논쟁이 일었다. 재판부는 ‘소추’ 의미가 기소를 포함하는 재판까지 해당된다고 보고 임기에는 재판을 사실상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재판받고 있는 다른 3개 사건의 재판부 역시 동일한 해석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원지법이 심리 중인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과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은 각각 다음 달 1일과 22일에 공판준비기일이 예정돼 있다. 위증교사 사건은 담당 재판부(서울고법 형사3부)가 6·3대선 전 이 대통령의 대선 후보 등록 사유를 들며 추정한 상태다.

추정 후 형소법 개정안 미룬 민주당

서울고법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대통령에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는 3월 26일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21년 방송에서 언급한 대장동 사업 실무를 맡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 관련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관련 발언을 모두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부 발언을 유죄로 인정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5월 1일 서울고법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의 연이은 재판 연기를 두고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6월 11일 서울고법 앞에서 현장 의원총회를 열었고, 여기에서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서울고법이 더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가장 먼저 권력에 아부하는 기관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입법·행정을 모두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이 사법 파괴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이 연이어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을 추정하자 민주당은 숨고르기에 나섰다. 당초 6월 12일로 예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를 미루기로 한 것. 각 법안엔 대통령 관련 재판을 중지하는 내용과 허위사실 공표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속도 조절엔 대통령실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6월 10일 “대통령실과 상의가 없을 수 없다. 여러 의견을 수렴해 원내지도부가 최종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임기 초 지지율이 중요한 상황에서 여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방송 3사가 6월 3일 전국 유권자 5190명을 대상으로 ‘심층 출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만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등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의 63.9%가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재판 중단’은 25.8%, ‘모르겠다’는 10.3%로 나왔다. 민주당 지지자 중에도 ‘재판 계속’과 ‘중단’이 각각 42.7%, 44.4%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사실상 해소해준 사법부를 두고 법조계 시각은 엇갈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적 정당성보다 민주적 정당성이 우선시되는 시기”라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준 좋은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정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가 추정 사유를 ‘임기 중 재판을 정지한다’고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헌법 제84조를 기반으로 해석했다기보다 민주당이 형사소송법을 개정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 총대를 메지 않는 비겁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3호에 실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서울고법#선거법#파기환송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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