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31일 큰 틀에서 무역합의를 도출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와 대미 투자금 수익 배분이 가장 큰 뇌관이다.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는 15%로 확정됐지만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 관세는 여전히 협상이 진행 중이다.
● 美 “농산물 완전 개방” vs 韓 “추가 개방 없어”
먼저 가장 큰 이견을 보인 분야는 농산물 시장 개방 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자신의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시장을 완전히 개방(completely OPEN)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예외 없는 완전한 개방’이다.
하지만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쌀과 소고기 시장 등 농축산물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사태 이후 30개월 미만에 도축된 경우에만 소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을 풀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미국과 협의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 대통령께서도 농축산물은 민감성이나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감안해서 개방을 막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다른 이유에 대해 김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 지도자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농업 분야는 99.7%가 개방돼 있고, 0.3% 약 10개 (품목만) 유보돼 있다”며 “쌀, 소고기 등을 담당하는 미 USTR은 (완전 개방을) 집요하게 얘기하지만 통상 (담당 미 부처)에서 보면 99.7%가 개방돼 있다. 통상이나 다른 부처는 상당히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해줬다”고 설명했다.
● 美 “투자 수익 90% 우리가” vs 韓 “합리적이지 않아”
우리 정부가 투자하는 3500억 달러(약 486조5000억 원) 규모 대미 투자펀드에서 발생하는 수익 배분을 놓고도 한미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내놨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사실 공개 이후 자신의 X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질 것(90% of the profits going to the American people)’이라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즉각 “그런 정도로 일이 되고 있지 않다”며 “정상적인 문명국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미국-일본 간의 협상에서도 벌어졌던 상황으로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앞서 일본은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약속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은 그 수익금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출자 비율에 따라 달라지며 그 수익을 얻는 것도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민간’을 의미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익 분배 비율 관련 “각 당사자의 기여도와 감수하는 위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미국이 90%의 수익을 가져가려면 비용과 위험도 그만큼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90%, 10%(배분은) 설명이 다 다르다. 미국 원문을 보면 투자로부터 90%를 유지한다(retain)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retain’이 무슨 뜻인지 논의를 많이 했다. 펀드 자체 구조가 아직 특정이 안 돼 있어서 90대 10이라는 것은 합리적으로 추론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retain’ 90%를 해석하기로는 재투자 (개념인) 것 같다”며 “이익이 나는데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이 펀드가 구성되고 작동하는 협의 단계에서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봐야 한다”며 “그 때 충분하게 우리 이익을 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 펀드가 운용될 수 있도록 우리 입장 개진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 韓 “자동차 관세 12.5%로 낮추려 했다”
한편 김 실장은 이날 협상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풀어냈다. 특히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를 15%로 낮추는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감안하면 12.5%가 맞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자동차 관세가 일본이나 유럽연합(EU)보다 2.5%포인트 낮아야 하지만 동일하게 15%를 적용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발언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 품목에서 0% 관세를 적용받았다. 반면 미국은 일본, EU와 FTA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약 2~3% 수준의 관세가 적용돼 왔다.
김 실장은 “우리는 당연히 12.5%가 맞다고 주장을 했다”며 “미국식 의사결정 과정을 들으셨겠지만 ‘됐고, 우리(미국측 통상당국)는 이해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라고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지난 4월1일 이후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협상들을 보면 WTO(세계무역기구)나 FTA 체제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FTA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외에 품목관세 협상에 대해서는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품목관세는 이번 협상 때 논의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김 실장은 “추후에 반도체나 의약품에 품목관세가 있으면 다른 합의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같은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받는 것으로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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