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미 공군의 B-2 ‘스피릿’ 스텔스 전략폭격기가 2019년 벙커 버스터 폭탄인 GBU-57을 투하하는 모습. 미군 제공
미국이 21일 이란의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 12발의 GBU‑57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하자, 많은 언론이 북한을 떠올렸습니다. 김정은도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분석입니다. 물론 북한은 핵무기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란처럼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도 빠질 수 없이 곁들였습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력정책법’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둘째, 국가지도부 등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셋째,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넷째,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다섯째,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입니다.
북한의 핵사용 교리는 ‘가장 공세적이고 급진적인 핵 독트린’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임박했다고 판단되거나, 전략 대상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거나, 기타 불가피한 상황 등이 언급돼 있지만, 한마디로 자의적으로 판단해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김정은 참수 작전은 당연하게 핵 보복 대상이 됩니다.
다른 핵보유국들도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핵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모든 나라들이 지도부가 무력화되면 핵을 사용한다는 ‘핵 독트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벙커버스터로 김정은을 제거하거나,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한다는 것은 핵 보복을 감내해야 하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도 핵무기를 사용하면 체제 궤멸까지 각오할 정도의 보복을 받아 무사하진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핵을 사용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런데 핵 교리와는 별개로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가 벙커버스터를 싣고 북한을 공격하는 동시에, GBU-57보다 관통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한국의 현무-5 미사일 수백 기가 동시에 타격하면 북한의 핵 보복 능력을 선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북한의 핵무기 저장 시설의 위치를 모두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할 수 있는 상상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가정에도 결론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의 지하 시설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에선 벙커버스터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북한에는 효율적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살펴보기 위해 북한의 지하 시설에 대해 설명해보려 합니다.
미국의 벙커버스터 공격을 받은 이란 포르도 핵시설. 12발의 벙커버스터가 6개 구멍을 뚫었다. 막사 테크놀로지.
● 북한의 지하 세계
이란은 벙커버스터로 타격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명확했습니다.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 3곳만 타격해 붕괴시키면 이란의 핵능력을 불능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의 지하 세계는 외부에서 알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합니다.
전 세계를 돌아보십시오. 면적에 비해 또는 인구에 비해 가장 많은 지하 시설을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아마 1등은 한국이고, 2등은 북한일 겁니다. 지하 세계의 끝판왕이 한반도라는 뜻입니다.
한국은 좁은 영토와 산악지형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땅을 팠습니다. 전국 지하철 총길이만 따져도 서울과 부산을 왕복으로 두 번 오갈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하는 1450㎞인데, 상당히 많은 구간이 지하에 묻혀 있습니다. 전국의 건물에는 깊은 지하 주차장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주차장이 지하 7층까지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산지가 발달한 지형 때문에 전국의 터널은 모두 3000개가 넘습니다.
이 정도면 지구 공군이 모두 날아와 폭격하고, 지구상의 모든 미사일이 한국을 타격한다고 해도, 대다수 한국인은 터널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은 터널 파는 기술도 세계 정상급이라 자고 나면 계속 어디선가 땅을 파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와 좀 다릅니다. 북한의 건물들엔 지하 주차장이 없고, 지하철도 평양에 총연장 길이 34㎞에, 역은 17개에 불과합니다. 도로와 철도를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널을 만들었지만, 뚫는 기술은 인력에 주로 의존하다보니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의 특징은 폭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널들을 팠다는 것입니다. 즉 지하 시설 대부분이 군사용으로 건설했다는 것이죠. 이는 북한이 겪었던 전쟁의 경험 때문이기도 합니다. 6·25전쟁이 끝난 뒤 평양의 2층 이상 건물 중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40만 명이 살던 평양에 43만 발의 폭탄이 투하됐습니다.
6·25전쟁 당시 B-29의 북한 폭격 장면. 주한유엔군사령부 홈페이지평양뿐만 아니라 북한의 모든 도시는 초토화가 됐습니다. 한국전쟁 시기 미군은 북한 지역에 무려 63만5000톤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시기 연합군이 태평양 전역에 투하했던 폭탄 60만 톤보다 많았고, 일본 제국 본토에 투하된 16만 톤의 무려 4배에 이르며,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유럽 전역 전체에 투하되었던 폭탄 160만 톤의 40%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폭격에 가족을 잃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북한엔 ‘폭격 노이로제’가 휩쓸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시기는 물론, 전쟁이 끝나도 파고 또 팠습니다. 깊이 더 깊이 팠습니다. 평양 지하철은 지하 100~150m 깊이에 건설됐습니다. 그러고도 한국보다 먼저 지하철을 개통했습니다. 물론 훗날에 GBU-57이나 현무-5 미사일이 나올 줄 알았으면 안심하지 못하고 더 깊이 내려갔을 겁니다.
평양 지하철 건설을 주제로 한 김일성 선전화. 군인들이 인력으로 바위를 제거하고 있다. 동아일보 DB평양뿐만 아니라 각 도시와 군들마다 지하철은 없어도 방공호들은 든든하게 지어졌습니다. 벙커버스터에 당한 이란이나, 팔레스타인과는 달리 북한은 원래 산악 지형이다 보니 높은 산을 파고들어 가면 됐습니다. 결과 1970년대 후반쯤 북한은 전쟁이 나면 모든 도시가 굴속에 들어갈 수 있게 완성됐습니다. 그냥 대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벌어지면 터널 안에 들어가 일상생활도 가능하게 지었습니다. 터널 안에 들어가면 무수한 줄기가 있고, 각 기관과 직장, 학교, 유치원 공간들이 있습니다.
군수공장은 애초에 폭격을 당할 것을 감안해 지하에 지었는데, 주로 산지가 가장 험준한 자강도와 평안북도에 몰려있습니다.
이 많은 터널을 무슨 수로 붕괴시킬 수 있을까요. 미군이 보유한 벙커버스터 수량은 이란 폭격 전에 약 20개로 추산됐습니다. 이중 이란에 14발을 썼으니 몇 개 남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필요하면 얼마든지 또 만들겠지만, GBU-57의 가격은 400만 달러(약 55억 원)로 추정되니 무한정 만들기엔 너무 비쌉니다. 한국의 현무-5 미사일도 1기당 1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며, 연간 70여 발까지 만들 순 있지만, 가격이 비싸 한국군은 200기 정도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중요한 곳들만 타격하면 효과가 있을 순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한 곳은 북한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 씨 일가 전용 터널들
북한의 지하 세계 중에 가장 견고한 곳은 김씨 일가의 안전을 위한 곳입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평양에는 유사시 수뇌부가 대피할 수 있는 300m 깊이의 땅굴이 부지기수로 존재한다”며 “1953~72년 사이에 착공된 지하철과는 다른 제2의 지하 세계”라고 말했습니다.
땅에 숨은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려면 평양 시민들이 대피한 150m 깊이의 지하철을 붕괴시키고도, 다시 150m를 더 관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북한 수뇌부가 땅에 들어가 한 곳에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김씨 일가를 위한 터널의 총연장 길이는 지하철보다 훨씬 더 깁니다.
평양에서 26년 동안 터널만 건설했던 공병국 소좌(소령) 출신 탈북민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평양엔 김일성광장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평양 중심부의 광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 약 200m에 있는 ‘비밀의 광장’입니다. 평양 주석궁(현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왼쪽 룡남산으로 터널로 이동하면 넓은 지하 공간이 나옵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김일성광장’인데, 룡남산과 김일성대 옛 운동장 아래에 위치해 폭격에 안전합니다. 이곳을 폭격하면 교정을 폭격해 대학생들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 김일성광장은 가로, 세로가 100m 이상이고 높이는 12m인데 전쟁 중이라도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할 수 있도록 건설됐습니다. 제가 입대한 1969년엔 이미 거의 완공돼 마무리 공사를 벌일 때였는데, 이곳에 가본 사람은 한국에선 저밖에 없을 겁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양 지하철의 유일한 환승역인 전우역에 가면 에스컬레이터로 150m 정도 지하로 내려갑니다. 수직으로 보면 지하 100m 깊이에 지하철이 있는 셈이죠. 내려가서 다시 숨겨진 비밀 입구로 가면 거기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150m 더 내려가 김일성 전용 땅굴이 나옵니다. 땅굴 너비는 당시 김일성이 타던 포드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폭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로 알려진 평양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동아일보 DB김정일 측근에서 2년 동안 있었던 또 다른 탈북민은 이런 증언을 했습니다.
“천천히 달리긴 했지만 차를 타고 지하로만 40분 정도 가는 별장도 있습니다. 지하차도는 1차선이고 너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적당해요. 거긴 지하에 각종 오락실, 수영장, 침실, 식당 등이 정말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인민대학습당이나 광복백화점 이런 민간 빌딩 아래 김정일의 아지트들이 있습니다. 방음 장치도 철저해서 민간인은 그 아래 그런 곳이 있을 줄 절대 상상도 못 하죠.
그렇지만 아지트에는 그 빌딩과 연결된 탈출구가 있어요. 민간 빌딩을 위에 이고 지하에 숨어버리면 폭격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도처에 그런 비밀장소가 있고 지하로 연결돼 있어서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 겁니다. 지하차도를 전담해 지키는 부대가 있는데, 그곳 군인들은 특혜를 받습니다. 제대해도 외부에 내보내지 않아 비밀을 지킵니다.”
이러한 증언을 종합하면 김씨 일가가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하고 지하에 들어가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일단 김씨 일가의 터널을 공격하려면 비난을 감수하고 대학이나 병원을 무너뜨리고 다시 지하 수백m를 더 관통해야 합니다. 인민대학습당이나 유경호텔 아래 같은 곳은 매우 안전한 거처일 겁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부가 병원이나 학교 등의 지하에 지하 벙커를 만든 것을 보면 북한에서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북한은 지도자를 위해서라면 인민은 언제든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수한 지하터널이 또다시 얼기설기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 곳을 폭격해도 즉각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두더지조차 살기 위해 굴을 얼기설기 복잡하게 만드는데, 가장 머리 좋은 수재들을 김씨 일가 경호에 우선적으로 발탁하는 북한은 얼마나 더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해 만들었겠습니까.
지하 시설을 건설한 경험은 비단 김씨 일가를 위해서만 쓰이진 않았을 겁니다. 북한의 핵 시설이나 군수공장도 북한이 축적한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모아 만들었을 겁니다. 물론 이런 것을 만들 때는 벙커버스터나 현무-5까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먹고 때리면 몇 개는 파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북한의 지하 시설 건설 능력에 대해 증언에 기초해 서술하긴 했지만, 분명히 과장도 섞여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북한 처지에선 “우리의 지하 세계는 너무 깊어 타격해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원래 있어도 없는 듯이 하는 것보단, 없는 것도 있다고 허풍을 떠는데 선수들입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경제난에 시달리다 보니 과거 만든 지하 세계 중에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입니다. 지하 터널을 유지하려면 지하수를 계속 퍼내야 하고, 이는 곧 전기가 많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기가 없어 북한의 주요 탄광, 광산들도 침수를 막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터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김씨 일가를 위한 지하 시설은 전기가 우선적으로 공급되니 예외이겠지만 말입니다.
평양 지하철도 1987년에 마지막 역을 만든 뒤 38년 동안 노선이 더 연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난 때문에 땅 밑을 팔 능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요즘 건설되는 터널들을 보면 사람들이 들어가 해머와 정으로 암반을 뚫어 발파를 진행합니다. 100년 전에나 쓰던 원시적 방법이죠. 그러니 북한이 붕괴한 뒤 지하 세계가 공개되면 한심해서 눈이 감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터널을 뚫는데 선수들이라 남침용 땅굴을 서울과 평택, 심지어 부산까지 연결했다는 주장도 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터널을 뚫는데 유능하다고 해도, 소리 없이 삽질만으로 서울까지 파들어 오고, 파낸 흙을 흔적 없이 처리하고, 대규모 양수기를 돌려 물을 계속 빼내며 관리하는 것은 북한도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북한이 1970년대 초반까지 파 내려오던 땅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비무장지대도 넘기 전에 다 발각됐습니다. 제일 긴 땅굴이 북한 쪽 길이까지 포함해 3.5㎞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 쪽으로 가장 많이 내려온 것이 1.2㎞였습니다. 물론 1990년에 4땅굴이 발견됐지만, 이것 역시 조사 결과 1970년대 뚫다가 중단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쓴 긴 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반도는 터널의 왕국이다. 북한엔 전쟁에 대비한 무수한 터널들이 있다. 벙커버스터가 아무리 많아도 무력화시키긴 어렵다. 김씨 일가가 유사시 땅굴에 들어가면 제거하기 어렵다. 다만 경제난 때문에 북한의 땅굴 능력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미 건설된 것도 유지가 어렵다.” 그렇다면, 벙커버스터에 얻어맞은 이란을 보며 김정은은 공포를 느낄까요, 아니면 코웃음을 칠까요.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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