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25%) 발효가 2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통령실이 한미 관세협상 돌파구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안보 패키지’ 조합을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산(産) 쌀과 소고기 수입 확대 등 미국의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 왔던 한미 동맹 현대화 기조에 맞춰 국방비 증액 등이 담긴 전향적 대미 패키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줄 수만은 없다. 서로 이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한미 간 줄다리기를 예고했다.
● 나토 수준(3.5%) 국방비 증액안도 검토
대통령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서한을 받은 뒤 내부적으로 기존 대미 패키지에 국한된 협상으로는 유예 기간 내 관세협상에서 지금보다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비관세장벽을 중심으로 관세 재부과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안보 분야를 연계한) 다른 관점을 미국에 제시했다”고 전했다. 방미 일정을 마치고 9일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브리핑에서 “동맹의 ‘엔드 스테이트(end state·최종 상태)’까지 시야에 놓고 협상하는 게 적절하지 않겠냐”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우리 정부와의 관세협상에서 미국산 쌀, 소고기 수입 제한 완화,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등 농산물·디지털 분야 비관세장벽을 집중 공략해 왔다. 정부는 미중 경쟁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조선 분야 협력을 비롯해 액화천연가스(LNG) 투자 등 패키지 제안으로 이 같은 요구를 상쇄하고 비관세장벽 분야는 국내 정치적 논란 등 민감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응해 왔다. 정부 소식통은 “비관세장벽은 결국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섣불리 수용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일단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는 안보 패키지의 가장 큰 현안인 국방비 증액과 관련해 대국민 설득이 가능한 증액 규모를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관철시켰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증액안 중 직접 비용인 3.5% 수준으로 국방비를 단계적으로(10년) 증액할 수 있는지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직접 비용 외에 우리가 방위를 위해 들이는 간접 비용도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도 어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상 전선이 확대된 만큼 안보 분야에서 그동안 미국이 제기한 주한미군 규모 및 역할 재조정,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압박이 본격화돼 협상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동맹국 기여 강화를 담은 국방전략(NDS) 수립이 다음 달로 예고된 가운데 여기에 담길 미국의 변화가 협상에서 쟁점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협상 장기화 시 ‘한미 불협화음’ 부담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카드 등을 검토하는 것도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익균형을 맞추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국방비 증액 등을 포함해 미국의 동맹 현대화에 일정 부분 발을 맞추면서도 이를 지렛대로 이른바 ‘대미 숙원사업’을 관철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기존 프레임을 훑어보고 제기할 수 있는 건 다 제기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다만 동맹의 자국 방위 기여와 역할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작권 전환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평가되는 만큼 대미 협상 카드로서의 실효성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이 완전하게 갖춰지기 전 섣부른 전작권 전환 추진이 대북 대비태세 및 확장억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1기 때도 미군은 우리 군의 전작권 전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고 검증 평가에 난색을 표한 전례가 있다.
패키지 협상을 둘러싼 양국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면 한미 정상회담의 개최 시점도 지연될 공산이 크다. 임기 초 조기 한미 정상회동을 추진했던 만큼 동맹 불협화음이 확대되는 건 현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정상회담 지연은 한미 고위급 교류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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