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오른쪽)가 17일 오전 강원 춘천시 민주당 강원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과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며 “통일부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춘천=뉴시스
대북정책 우선순위와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정부 내 ‘자주파’(남북관계 중시) 대 ‘동맹파’(한미동맹 공조 중시)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갈등이 아닌 견해 차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정부가 내년 남북대화 재개를 목표로 내건 가운데 한미 연합훈련, 대북 제재를 두고 미국과 이견을 보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남북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한 ‘역할 분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외교부가 주도한 한미 대북정책 협의를 겨냥해 “사사건건 미국 결재 받고 실행에 옮기면 남북관계를 꽁꽁 묶는 악조건이 될 수 있다”며 정 장관에게 힘을 실었다.
● 대통령실 “정 장관 역할 있어”, 與도 자주파 지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7일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력에 지장이 없다면 의견 대립 표출은 가능하다”며 “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 장관은 남북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매개 역할”이라며 “미국의 의도와 조금 벗어나는 주장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대북정책을 조율하고 있지만 정 장관이 북한과의 대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취지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내부 이견이 심각한 건 아니다”라며 “NSC에서 이미 정리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공개적으로 통일부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과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며 “통일부는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를 주 업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통일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당내 ‘한반도평화전략위원회’(가칭)를 설치하겠다며 “한미 관계 자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에 조언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명(친이재명)계 원외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도 이날 논평을 내고 “남북관계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통일부가 주체적으로 추진하고, 외교부는 미국과의 협조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조직법과 헌법에 부합한다”며 “외교부가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서 이를 주도하려는 행태는 명백한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대통령실 내부에선 정 장관이 이른바 ‘명심(이 대통령의 의중)’을 들어 한미 연합훈련 조정이나 NSC 구성 변경 등에 목소리를 높이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특정 부처 고위 관계자가 오버페이스를 할 때 자제시켜야 한다”며 “NSC 내에서도 특정 부처 입김이 거세지는 건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joint factsheet)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을 찾은 위 실장은 16일(현지 시간) 대북정책 주도권 문제에 대해 “정부 내 외교·안보 이슈를 놓고 견해가 조금 다를 수 있다. 건설적 이견이기도 한데, 그건 항상 NSC를 통해 조율, 정리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안의 경우에도 한미 협의 건에 대해서 NSC에서 논의가 있었다. 굉장히 긴 논의가 있었고 많은 토론을 거쳐 정리가 됐던 것”이라며 “정리된 대로 이행됐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 외교부 “한미 협의는 워킹그룹 아냐”
외교부는 이날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는 문재인 정부 당시 가동했던 “한미 워킹그룹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통일부는 회의 개최 전날 외교부 주도의 한미 협의가 한미 워킹그룹과 유사하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주파와 동맹파 간 이견 속에 자주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 한미 공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 안보부처 고위 관계자는 “정권 출범한 지 6개월이 됐는데도 미국과의 공조와는 결이 다른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것은 ‘명심’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정책 혼선이 계속되면 미국의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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