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보 무시한 중국인 살리고…구명조끼 벗어준 경찰은 어둠 속으로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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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재석 경사가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모습/뉴스1
故 이재석 경사가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모습/뉴스1

갯벌에 고립된 70대 중국인을 구조하던 해양경찰관 이재석 경사(34)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입힌 뒤 노인을 살리고, 정작 본인은 바다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했다.

바닷물 높이 최대치…주의보 내렸는데

12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달 6일부터 13일까지 연안 안전사고 위험예보 ‘주의보’가 발령됐다. 바닷물이 연중 가장 높아지는 백중사리 대조기 기간으로, 해경은 “물때 확인과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사고 당일(11일) 새벽, 70대 중국인 A 씨가 인천 옹진군 영흥면 꽃섬 갯벌에서 해루질을 하다 고립됐다. 그는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이경사가 고립된 노인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있다. 뉴시스
이경사가 고립된 노인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있다. 뉴시스

해경 측은 A 씨가 위험주의보를 무시했으나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경 관계자는 “현행법상 위험예보를 무시했다고 해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다만 위법 소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에는 착수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 구명조끼 벗어주고,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 경사는 다리에 상처를 입어 거동이 불편한 A 씨를 발견했다.

밀물이 차오르자 그는 자신이 착용한 구명조끼와 순찰 장갑을 벗어 건넸다. A 씨와 함께 헤엄쳐 나오던 그는 결국 실종됐고, 약 6시간 뒤인 오전 9시 41분 꽃섬에서 0.8해리(약 1.4㎞) 떨어진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명조끼를 입은 A 씨는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12일 인천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이재석 경사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져 있다. 2025.9.12/뉴스1
12일 인천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이재석 경사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져 있다. 2025.9.12/뉴스1

왜 단독으로 출동했나?

사건 당시 이 경사가 홀로 출동한 사실도 논란이다. 해경 훈령 ‘파출소 및 출장소 운영 규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2명 이상이 함께 출동하도록 규정한다.

당시 파출소 근무자 6명 중 4명이 휴게 중이었고, 이 경사 혼자 현장으로 이동했다. 다른 직원들은 그보다 늦게 현장으로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왜 단독 출동이 이뤄졌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해경 측은 “휴게시간이라도 2명 이상 출동이 원칙”이라며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고 (故) 이재석 경사(34) (사진=인천해양경찰서 제공)
고 (故) 이재석 경사(34) (사진=인천해양경찰서 제공)

■ “영웅이여, 편히 쉬소서”…국내외 추모 물결

이 경사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5일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거행된다. 고인에게는 경사에서 경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조훈장이 추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조전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을 구한 숭고한 희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중국 온라인에서도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중국 관찰자망, 상관신문, 훙싱신문 등 주요 언론은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고, 중국 포털 바이두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도 관련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중국 네티즌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이 청년은 영웅이다”, “직업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영웅의 명복을 빈다. 편히 쉬시라”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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