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이 복지의 핵심 문제를 ‘불신의 구조’로 진단했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복지는 그동안 선의로 버텨온 영역입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만난 김현훈 회장은 복지의 현재를 이렇게 짚었다. 환한 표정이었지만, 말의 방향은 또렷했다. 지금의 복지 구조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진단이었다. 변화의 필요성은 이미 현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올해 3월 제35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현장의 뜻이 모인 결과”라고 말했다. 동시에 협의회의 역할을 “흩어진 복지 현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설립된 전국 단위 민간 협의 기구이면서 동시에 공공기관이다. 정책 연구와 현장 조정, 자원봉사, 교육훈련 등 민・관의 복지 생태계를 잇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국 시·도, 시·군·구 협의회를 연결하는 구조 역시 이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서로 다른 영역과 주체를 이어주는 ‘중간 지점’의 기능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지금 복지의 문제를 ‘구조’에서 찾았다. “현장은 계속 바뀌고 있는데,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 ‘신복지 5.0’…복지를 정책이 아닌 ‘문화’로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그가 취임 직후 내놓은 방향은 ‘신복지 5.0 문화운동’이다. 저출생, 초고령화, 지방소멸. 여기에 팬데믹 이후 달라진 사회 인식과 디지털 전환까지 겹치며 기존 복지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복지를 제도나 정책으로만 보면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문화로 확장해야 합니다.”
신복지 5.0은 신뢰 기반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경영, 지역 중심 통합돌봄, 스마트복지, K-복지의 세계화 등 다섯 축으로 구성된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신뢰’였다. “지금 복지 현장은 감시와 규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행정은 통제하고, 현장은 대응하는 구조. 그는 이 구조가 복지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봤다. 실제 현장에서는 절차를 맞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쓰이고, 그만큼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줄어든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문가를 믿지 않는 시스템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는 복지 현장이 ‘관리 대상’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주체’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제는 부족이 아니라 불신”…구조의 핵심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김 회장이 반복해서 꺼낸 단어는 ‘불신’이었다. 복지 재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신뢰가 부족해 비효율이 쌓인다는 설명이다.
“서류와 절차는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그는 이를 ‘증명 중심의 행정’이라고 표현했다.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시간이, 사람을 돌보는 시간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는 결국 관계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은 관계를 만들기보다, 관계를 증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합니다.”
보고와 점검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현장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택을 고르게 되고, 새로운 시도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그렇게 쌓인 선택들이 결국 복지의 움직임 자체를 둔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좋은 복지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현장은 먼저 지친다.
● 100만 복지인, 그러나 쉴 곳은 없다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이 문제는 ‘복지인의 복지’로 이어진다. 국내 사회복지 종사자는 약 100만 명. 그러나 이들을 위한 회복과 교육 인프라는 사실상 비어 있는 상태에 가깝다.
김 회장은 이를 “선의에 의존해온 구조의 결과”라고 말했다. “복지는 좋은 일이라는 이유로, 종사자의 희생을 전제로 운영돼 왔습니다.”
낮은 보상과 높은 감정 노동, 반복되는 소진. 그는 이 구조를 더 이상 당연하게 둘 수 없다고 했다.
해법으로 꺼낸 것이 ‘사회복지연수원’이다. “100만 명이 넘는 사회복지인이 있지만,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 하나 없습니다.”
연수원은 단순한 교육시설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회복할 수 있는 기반으로 구상되고 있다. 일에서 잠깐 떨어져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복지훈장’ 신설도 함께 제안했다.
“평생 사람을 돌본 이들에게 사회가 공식적으로 존중을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헌신은 있었지만, 이름을 불러준 적은 많지 않았다.
● 복지 사각지대를 찾는 방식…‘그냥드림’
현장에서는 다른 방식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냥드림’ 사업이다. 먹거리를 건네는 동시에, 위기가구를 찾아 연결하는 구조다.
지난해 12월부터 약 3개월 동안 6만 명 이상이 이용했고, 수천 건의 상담과 연계가 이어졌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던 필요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회장은 이 이야기를 하다 잠시 과거를 꺼냈다.
일본 유학 시절, 지역 복지관에서 도시락을 배달하던 때였다. 며칠째 문이 열리지 않는 집 앞에서 그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때 느꼈습니다. 복지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가야 하는 일이라는 걸요.”
그 경험은 지금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중요한 건 단순 지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입니다.”
그는 복지가 ‘신청을 기다리는 구조’에서 ‘먼저 찾아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복지는 결국 사람”…연결과 신뢰의 복지로
황수영 기자 ghkdtndud119@donga.com
그는 지금 복지의 과제를 ‘얼마나 더 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어주느냐’로 본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고, 끊기지 않게 이어주는 일. 그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복지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연결돼야 작동합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복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복지는 결국 사람입니다.”
선의로 버텨온 구조에서 신뢰로 작동하는 구조로. 그는 답을 말하기보다, 방향을 남겼다.
‘함께미래 리더스’는 공익 현장의 리더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그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통해 미래를 묻는 인터뷰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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