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7개월만의 복귀 첫날
고연차 전공의는 바로 수술 투입… “사직 안한 동기, 선배로” 어색함도
공백 메운 PA간호사와 분담 과제… 지방은 거점병원조차 절반만 복귀
일부 “인권 지키겠다” 노조 설립
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들은 1년 7개월 만에 이날 수련병원으로 복귀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각 진료실 앞 대기실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는 “수술과 진료가 의정 갈등 초기보다 많이 회복됐는데, 마침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돌아와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 김모 씨(66)는 “더 이상 진료가 밀릴까 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 “수술-진료, 의정 갈등 전으로 회복” 기대
1년 7개월간의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의료진도 전공의 복귀를 반겼다.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만난 비뇨의학과 간호사는 “우리 과는 전공의가 다 돌아와서 일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치의가 많아야 환자 한 명 한 명 더 세심하게 돌볼 수 있다”고 했다. 김수진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 종일 인턴, 레지던트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센터에 손이 부족해 서둘러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전공의는 곧바로 진료나 수술에 투입됐다. 정형외과 복귀 전공의는 “오전부터 환자를 보느라 1년 반의 공백을 느낄 틈도 없었다”고 했다.
병원은 당직 근무표를 새로 짜고 신규 외래 환자도 조금씩 늘리는 등 의정 갈등 전으로 진료량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는 “다행히 고연차는 거의 복귀했고, 저연차도 한두 명 외엔 돌아왔다. 다만 1년 반의 공백이 있었고, 새 연차로 수련을 재개했기 때문에 몇 주간 적응 기간이 지나야 수술이나 진료량이 회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수련 시간 줄이고, 잡무 안 맡겨”
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요구해 온 수련 환경 개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젊은 의사의 이탈이 많은 필수과일수록 전공의 처우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당 근무 시간(80시간) 준수는 물론이고, 시범사업 수준인 72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도권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 차 레지던트는 “앞으로 고연차는 외래 실습, 진료 참관에만 집중하고, 저연차도 검사 예약 등 그동안 해 왔던 부수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고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공의 공백을 메워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와의 업무 분담도 과제다. 수도권 대학병원 성형외과 3년 차 레지던트는 “근무 시간 단축 등 전공의 수련의 질을 높이려면 PA 간호사가 없어선 안 된다. 다만 각 시술이나 처치를 어떻게 분담할지 정리가 안 돼 있어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갈등을 빚었던 교수나 사직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 온 전공의들과 서먹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수도권 대학병원 복귀 레지던트는 “‘중간 착취자’라고 비판해 온 교수들과 다시 사제 관계로 돌아가는 게 편하지 않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잡무를 안 맡으면 교수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구조라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상급종합병원 3년 차 레지던트는 “사직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던 후배가 같은 연차가 되고, 동기는 선배가 됐다. 의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전공의의 요구가 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주당 근무 시간을 60시간까지 줄이면 현재 3∼4년인 수련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어디까지가 잡무인지 기준도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 “인턴 절반 이탈” 지방 필수과 궤멸 우려
전공의 복귀율 70∼80%의 수도권 수련병원과 달리 지방은 거점 국립대병원조차 복귀율이 50% 안팎에 그쳤다. 특히 필수과는 저연차를 중심으로 이탈자가 많아 수련과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
부산대병원은 인턴 63명을 모집했지만 35명(55.6%)만 채웠다. 지난해 2월엔 정원을 거의 채웠는데, 20여 명이 서울 소재 수련병원에 신규 지원하면서 도미노처럼 빈자리가 생겼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년 차 레지던트 3명 중 2명이 복귀하지 않았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은 “합격한 인턴도 내년에 인기과 위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게 뻔하다. 5년 후엔 지방에서 신규 필수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일부 전공의는 근무 첫날 노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은 이날 “국내 모든 수련병원을 포함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합이다. 전공의의 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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