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선물’ 포기하고 ‘OO’을 택한 초등교사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12월 5일 12시 00분


코멘트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아동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아동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이 사람이 포기한 ‘명품백 선물’은 ‘생명의 물’이 돼 지금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목을 적셔주고 있다. 경북 상주 옥산초등학교 영양교사 박선우 씨(여·54) 이야기다.

경북 김천에 사는 박 씨는 올해 결혼 30주년이다. 박 씨의 신혼 생활은 누구보다 힘들었다. 결혼할 때 새내기 공무원이었던 그는 적은 월급으로 살림을 꾸렸다. 남편은 결혼하던 해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수입이 전무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박 씨의 월급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십수 년을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텼다.

다행히 조그맣게 시작한 남편의 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두 아들은 단단하게 잘 자라주었고 큰아들은 어느덧 서른 살이 됐다. 남편 회사는 안정 되게 자리 잡았다. 박 씨도 경력이 쌓여 이제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다.

어느날 남편은 “그동안 가정 꾸리느라 고생 많았으니 명품백이든 뭐든 원하는 거 사”라며 큰돈을 건넸다. 놀란 박 씨는 “정말 다 써도 돼?”라고 되물었다. 남편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박 씨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고 싶다”고 선언했다. 늘 마음속에 생각해 둔 것이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아동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아동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깨끗한 물 하늘로 치솟을 때, 반짝이던 눈동자 잊을 수 없어”

“예전에 언젠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아프리카에 우물 파는 것을 봤어요. 황량하기 그지없는 메마른 땅속에서 팝콘이 튀듯 깨끗한 물이 하늘로 치솟을 때 새까만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반짝이던 눈동자와 기쁨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감격한 박 씨는 자기도 언젠간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인터넷에서 우물 파는 단체를 검색해 굿네이버스의 ‘식수위생지원사업’을 알게 됐다. 굿네이버스는 오염된 물로 인해 각종 질병과 어려움에 노출된 지역에 안전한 식수 및 위생시설을 보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물을 판 뒤에는 주민들로 구성된 식수위생위원회를 조직해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돕는다. 주민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벌인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탁월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믿을 수 있고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 우물 하나를 온전히 파면 현판을 세우고 태극기를 그려 넣어줘요. 저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웠기에 우리나라를 그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박 씨의 ‘우물 파기’는 올해로 4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르완다 우물 파기 사업에 1000만 원, 2022년 말라위 사업에 700만 원, 2023년 라오스 사업에 1000만 원, 니제르 사업에 1215만 원을 지원했다. 식수위생지원사업에만 총 3915만 원을 내놨다.

“애당초 1년 중 몇 달의 수입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니 오히려 나눔이 한결 편해 졌어
요.”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마을 주민들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마을 주민들이 식수펌프를 사용하는 모습.
르완다 산주(Sanzu) 초등학교 학생이 식수대를 사용하고 있다.
르완다 산주(Sanzu) 초등학교 학생이 식수대를 사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편지 “아이들 이제 안 아파요”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편지가 왔다. 박 씨가 굿네이버스를 통해 처음으로 우물을 판 나라는 르완다의 산주 초등학교다. 전교생이 1500명쯤 되는 큰 학교였는데, 우물을 파준 후 이 학교 교장이 자필 편지를 보냈다.

교장은 “깨끗한 물이 있어 아이들의 질병이 줄어들고 물을 긷지 않아도 되니 수업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감사하다”고 적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손을 씻어야 하는지 왜 옷을 빨아 입어야 하는 지 등의 위생교육도 한다는 소식도 적었다. 그동안 먹을 물도 없었던 아이들에겐 씻는 개념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편지 내용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어요.”

우물 파기 외에도 그는 필리핀과 에티오피아에 살고 있는 어린이 2명을 매달 후원 하고 있다. 올해로 20년째다.

“그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감사의 편지가 와요. 새로 산 학용품을 사진으로 보여주거나, 새 옷을 입고 방긋 웃는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해요. 내게는 적은 금액이지만 그 아이의 가정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아이가 꿈을 가진 사람으로 잘 성장하고 있음에 가슴이 벅차올라요.”

2022년 진행된 박선우 회원(왼쪽) 더네이버스클럽 등재식.
2022년 진행된 박선우 회원(왼쪽) 더네이버스클럽 등재식.


“아들아, 네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해” 남편 응원에 눈물 주르륵

박 씨의 이런 결정에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남편은 “엄마 같은 여자랑 결혼하라”고 두 아들에게 말했다.

“남편의 그 말이 그동안 고생했던 나의 삶을 알아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어요.”

박 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도 “우리가 지금 얼마나 물질적으로 충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자”는 이야기로 수업을 마무리한다.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마을 식수펌프 현판
말라위 솔로모니(Solomoni) 마을 식수펌프 현판


“피자는 나눠먹을 때 더 맛있어”

박 씨는 식수위생지원사업 후원을 계기로 지난 2022년 굿네이버스 특별회원 모임인 ‘더네이버스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더네이버스클럽은 연 1000만 원 이상 후원한 회원 중 특별한 나눔 활동을 통해 후원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고 기부 문화 확산을 이끌어가는 모임이다.

이 외에도 ‘지역후원회’ 활동 참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지역후원회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개인 후원자 모임이다. 국내 지역을 비롯해 해외까지 후원, 홍보, 자문 등의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 조직이다.

박 씨는 “인류애 같은 거창한 목적으로 나눔을 시작한 게 아니다. 같은 별에서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데 한쪽은 풍요롭다 못해 넘쳐나고 다른 한쪽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조차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고 이유를 밝혔다.

“우리가 피자를 사면 혼자서 한판을 다 먹지 않잖아요? 나눠 먹으면 더 맛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요.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어렵지 않아요.”

박선우 회원의 후원을 통해 르완다 산주(Sanzu)초등학교에 설치된 식수대
박선우 회원의 후원을 통해 르완다 산주(Sanzu)초등학교에 설치된 식수대


#아프리카#우물#생명의 물#따만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