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대충 수사’ 수사한 경찰, 결론은 ‘줄줄이 불송치’ [디지털 동서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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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일 경남 사천시 한 채석장 내 비포장도로에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추락해 전복돼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차량 수색 부실 등 당시 수사한 경찰관들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던 점이 인정되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불송치 결정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경남경찰청 관계자들은 기자실을 찾아 1년여 전 발생한 ‘사천 채석장 발파(發破) 사망사고’ 수사 결과를 백브리핑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마디로 ‘대충 수사’했지만 대충 수사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

사망 사고는 지난해 8월 2일 발생했다. 사천시 한 채석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던 중 튄 돌덩이 파편에 맞아 자동차 운전자와 동승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발파 업체의 대표와 전무였던 이들은 이 발파 과정에서 3m 언덕 아래로 차와 함께 추락했다.

당시 사천경찰서는 이 사고를 단순 추락 교통사고로 판단했다. 발파와는 무관하게 차량이 추락했다는 취지인 발파팀장 김모 씨의 신고 당시 진술을 믿은 것이다. 이 진술을 따라 초동 수사한 경찰은 자동차 감정을 누락했고, 차 내부 수색도 부실하게 했다. 유족은 당시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마쳤다. 교통사고라고 확신해 사망자들에 대한 부검 영장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은 ‘운전자 부주의’로 보고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상황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족이 경찰 수사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 근거가 같은 달 속속 나왔다. 유족들이 나서 사고 차량과 채석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확인한 이후다. 차가 전복되기 직전에 발파 작업이 있었던 정황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해 8월 2일 경남 사천시 한 채석장 내 비포장 도로에서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추락해 전복돼 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단독 교통사고였다는 경찰의 ‘대충 수사’가 뒤집히고 안전사고라는 사실이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남경찰청은 재수사를 통해 ‘발파로 인한 안전사고’라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놓았다. 차량 지붕에 길게 찢어진 흔적과 부서진 앞 유리가 날아온 돌에 의해 생긴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도 확인됐다. 발파 때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돌 파편 19개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어렵지 않게 증거가 나온 것이다. 발파 경고도, 위험구역 내 감시원 배치도 없었던 걸로 확인됐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총경급 경찰은 본보 기자에게 “우리 조직이지만 참 부끄러운 초동수사”라고 했다.

경남경찰청은 발파팀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지난해 10월 불구속 송치했다. 교통사고가 아님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중대재해 혐의를 은폐하고 증거 보존을 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사천경찰서 경찰 4명과 노동부 근로감독관 2명, 채석장 관계자 12명 등을 직무 유기 및 증거 인멸 혐의로 같은 달 고소·고발했다.

‘줄줄이 불송치’. 사고 1년여 뒤 나온 ‘대충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는 여섯 글자로 요약된다.

수사 경찰관들에 대해선 사고 차량 감정을 누락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하고 차량 내부 수색을 부실하게 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고의성이 없기에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적용해 담당 수사관 1명만 검찰에 넘겼다.

사망 사고 이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은 근로감독관들도 불송치 결정했다. 당시 원인 조사가 끝나지 않아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작업 중지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사고 당일 추가 발파가 진행되며 현장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나온 터다.

사고 차를 폐차 시도하고 추가 발파를 진행했으며, 서류를 반출한 업체 직원들도 불송치 처분했다. 수사를 방해할 동기 및 은폐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는 취지다.

노동계는 “범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며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란 논평을 내놨다. 유족들은 검찰 전면 재조사 촉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충 수사로 하마터면 진실이 가려질 뻔했다. 그런데 대충 수사한 경찰을 수사한 경찰이 내놓은 결과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유족이 봤을 때도 석연치 않은 점이 금세 나온, 난도가 높지 않은 사건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출동한 담당 경찰관들은 못 본 것인가, 아니면 대충 수사하고 사건을 종결시키고 싶었던 것인가. 대충 수사한 경찰을 수사한 경찰의 발표가 이런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도영진 기자
도영진 기자
경남경찰청은 이 사고 이후 ‘교통사고 발생 시 과학수사 현장 감식 강화 계획’을 수립하고 초동수사 미흡 사례가 없도록 사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계획만큼은 제대로 지켜져 대충 수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도영진(부산경남취재본부)

#초동수사#경찰#사천 채석장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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