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시프트, 숲이 바뀌어야 사람도 산다]
유한킴벌리, ‘생태자연복원’ 사업
회생 가능한 나무는 부목 대고 지탱… 고사목 안버리고 배수로 등 재활용
울진-동해 등 산불지역 복원 나서… “느리지만 숲과 사람 모두에 이익”
경북 울진군 북면 상당리 산 6번지에 2022년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숲 사이로 통나무로 만든 산사태 방지 시설물 ‘누구막이’가 설치된 모습. 유한킴벌리는 이곳에서 기존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는 ‘생태자연복원’ 방식으로 산사태 예방과 숲 복원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제공
“겉보기에 불탄 나무라도 살아 있을 수 있어요. 여기 싹이 틔어 있는 거 보이시죠?”
지난달 29일 경북 울진군 북면 상당리 산6번지에서 만난 김석권 시민단체 ‘생명의숲’ 공동대표는 한 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2022년 대형 산불로 껍질이 까맣게 타 검댕이 묻어나오는 나무였지만, 줄기에는 작고 연한 움싹이 돋아 있었다. 김 대표는 나무에 대어진 부목을 살피고 껍질 상태를 만져보며 회복 정도를 꼼꼼히 확인했다. 나무 주변은 잡초가 깨끗이 제거돼 있었고, 땅은 비가 와도 배수가 잘되도록 정리돼 있었다.
● 산 나무 보존, 죽은 나무는 재활용
상당리 산자락에는 이 나무를 포함해 수천 그루의 산불 피해목이 여전히 서 있다. 언뜻 보면 방치된 듯하지만, 살아 있는 나무에는 부목이 대어져 있고 주변 잡초가 정리돼 있었다. 상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면서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생태자연복원’ 방식이다.
이 방식은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해 피해목을 전부 베고 새로 심는 ‘인공 복구’와 다르다. 기존 숲의 구조와 토양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이미 죽은 나무는 버리지 않고 배수로나 누구막이(산사태 방지 시설) 등으로 재활용한다. 나무뿌리가 약해진 지반이 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이다. 울진 피해지 곳곳에는 고사목으로 만든 배수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토양이 드러난 곳에는 새 묘목이 규칙적으로 심겨 있었다. 일부 구역에는 토종 풀과 꽃이 자연스럽게 자라며 토양을 덮고 있었다.
유한킴벌리는 ‘생명의숲’ 등 시민단체와 함께 2023년부터 울진·동해 등 산불 피해지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해에는 9.2ha, 울진에는 10ha 규모로 활엽수와 토착 수종을 심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협력해 장기적으로 생장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복원 방향을 전문가와 논의한다. 산림청 역시 행정 지원과 예산 일부를 뒷받침하고 있다.
울진 피해지는 피해 상태와 지역 여론을 고려해 생태자연복원 방식을 택했다. 복원 인력이 나무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해 이미 죽었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나무만 벌목하고, 살 가능성이 있는 나무는 부목을 대어 지탱하도록 한 것이다. 복원 작업에 참석한 생명의숲 관계자는 “인간이 과도하게 숲에 개입하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산불 이전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복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은 대규모 벌목이 필요하지 않아 비용이 적게 들고, 중장비 사용이 줄어들어 토양 훼손이 적다. 반면 인공 복구는 피해목을 전부 베어 새 숲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환경 부담과 비용이 크다.
● 대학생과 함께하는 ‘그린캠프’
유한킴벌리는 복원 현장을 알리고 산불 피해의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해 대학생 대상 ‘그린캠프’도 운영한다. 1988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올해 7월 28∼30일 전국 대학생 80명이 참가해 울진·동해·안동 등 산불 피해지를 방문했다. 참가자들은 복구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생물다양성 강연을 들었으며, 숲속 체험과 토론도 이어갔다. 일부 참가자는 “책으로만 보던 복원 과정을 실제로 보고 나니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대표는 “산불 피해지를 빠르게 복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살아남은 나무가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하다”며 “생태자연복원은 숲과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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