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경남도가 전국 최초로 119구급대가 이송을 요청하면 환자를 받을 때까지 병원 내 경보가 울리는 ‘경광등 알림 시스템’을 도입했다. 경남도는 이 시스템을 지난달부터 창원을 비롯한 도내 34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설치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8일 밝혔다.
● 응급환자 받을 때까지 경광등 알림
지난달 21일 오전 7시경 창원시의 한 병원 응급실. 환자 관제 데스크에 설치된 경광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의창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가 인근 모든 응급실에 경보를 울린 것이다. 의료진은 즉시 119스마트시스템에 접속해 환자의 맥박 등 활력 징후를 확인한 뒤 ‘환자 수용’ 버튼을 눌렀다. 곧 이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무사히 치료받았다.
기존에는 구급대원이 응급실에 일일이 전화해 환자 증상을 설명하고 치료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경광등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119구급대가 이송 요청을 하면 응급실에 설치된 경광등이 점멸하며 수용 여부를 의료진이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병원이 ‘환자 수용’ 또는 ‘수용 곤란’을 입력할 때까지 경보가 계속된다. 신속한 병원 선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8년 일본 오사카시가 도입한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의 한국판이다.
창원의 한 응급실 간호사는 “이전에는 구급대원 전화가 오기 전까지 환자 발생 사실조차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경광등을 통해 곧바로 인지하고 수용 결정을 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봉곡119안전센터 김채율 소방사도 “경광등과 119스마트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골든타임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 의정 갈등 후 ‘응급실 뺑뺑이’ 2만 명 증가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체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이유는 지난해 초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대란’ 이후 응급실 뺑뺑이 환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소방청 119구급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119구급대 출동부터 병원 도착까지 1시간 이상 걸린 환자는 2023년 11만3081명에서 지난해 13만3683명으로 18.2%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지난해 1월부터 ‘제주형 24시간 이송·전원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중증 응급질환 치료 가능 병원을 매월 파악해 구급대에 공유하고, 병원이 수용을 거부할 경우 적정 병원을 신속히 섭외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를 통해 2024년 한 해 동안 2069명의 환자가 적시에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중 87.8%가 중증 환자였다. 이 시스템 도입 이후 경증 환자의 병원 이송도 줄어들었다. 2023년 1만5404명이던 경증 환자 수는 지난해 1만23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전북도 소방본부도 1월부터 ‘전북형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중증도와 증상을 119스마트시스템에 입력하면, 시스템에 등록된 병원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수용 가능 여부를 회신한다.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지난해 상반기 19분 35초였던 병원 이송 평균 소요 시간이 18분 55초로 40초 단축되는 성과를 거뒀다.
전문가들은 지자체 차원의 이런 노력을 반겼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전문의와 병상이 부족한 비수도권에서 특효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며 “단기 대책에 그치지 않고 최종 치료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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