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정 촉박땐 철근 축소” 부실시공 논란 대우건설 내부지침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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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철근 누락’ 법정 다툼 과정 공개
항목마다 ‘원가절감 효과 별점’ 표시
전문가 “구조적 결함 원인될수 있어”
대우건설 “소통위한 문서, 위배 안해”

2년 전 서울 아파트 신축에서 띠철근 일부를 누락해 논란을 일으켰던 대우건설이 ‘일정이 촉박하면 철근 배치를 임의로 축소하라’는 취지의 내부 설계 지침을 활용해 온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 지침엔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원가절감 체크리스트’도 포함돼 있었다. 지침을 분석한 한 전문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마른걸레를 찢어지지 않는 선까지 쥐어짠 셈”이라고 지적했다.

● 내부 지침에 “철근 배치 축소” “벽량 최소화”

13일 본보가 입수한 100쪽 분량의 ‘아파트 및 지하주차장 구조설계 지침’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구조설계 용역비 보전’ 항목에 “설계 일정 부족 시 임의로 배근(철근 배치) 축소하여 접수(하라)”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객원교수는 “일정 문제로 철근을 줄이는 건 구조적 결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도 “철근을 무턱대고 ‘줄인다’라고 명시하면 안 된다”고 했다.

구조설계 단계를 39개로 세분화하고, 항목마다 ‘원가절감 효과’ 별점을 1∼5개로 표시하는 내용도 지침에 포함됐다. ‘기준층 벽량(무게를 버티는 벽의 비중)’ 항목의 경우 “변위(흔들림 기준)를 겨우 만족하는 수준으로 최소화. 과다 시 공사비만 증가”라는 설명과 함께 별점 5개를 매겼다.

“기준에서 정한 것 외에 임의로 추가 안전율을 적용해선 안 된다” “해석(설계 계산)에 의하지 않은 어떠한 보강근도 추가해선 안 된다” 등의 문구도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지반 등 환경을 보고 철근을 더 넣는 식의 추가 안전 조치를 취할 수도 있는데, 자칫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다양한 현장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안전성에 대한 기준을 성급히 못 박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침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도 있었다. 김용학 한국건축시공기능장협회장은 “기업의 채산성을 강조한 문구가 있을지언정 부실설계를 유도하는 내용은 없다”고 했다.

● “지침 공사현장 적용”… 시공사 “기준 위반, 부실설계 유도 없어”

해당 지침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임대아파트 ‘푸르지오발라드’를 두고 시공사인 대우에스티(대우건설 자회사)와 시행사 이노글로벌이 부실시공 여부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공개됐다. 이 아파트에선 2023년 12월경 지하 1층 주차장 기둥 7곳의 띠철근 누락이 발견돼 외부에 철판을 대는 방식으로 보강 공사를 한 바 있다. 지침은 2015년 10월 작성됐는데, 이노글로벌 측은 불광동 현장에도 이 지침이 적용됐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은 해당 지침이 불광동 현장에 적용되지 않았고, 지침 자체에도 기준을 위반하거나 부실 설계를 유도하는 내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배근 축소 항목에 대해선 “설계와 시공을 한 번에 하는 ‘패스트트랙’ 공정에 사용되는 지침”이라며 “공정상 필요한 부분만 설계하고 나머지를 보충하기 때문에 실제 시공은 최종 구조설계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원가 절감 별점 등에 대해서도 대우건설은 “(지침은) 설계자와 시공자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작성된 문서일 뿐 국토교통부의 건축구조 기준을 위배해 적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지침 자체에는 법적인 문제가 없을지라도 현장에서는 ‘안전성보다 경제성을 우선시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명기 교수는 “(경제성 관련)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실제 현장의 변화무쌍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띠철근 누락#부실시공#대우건설 내부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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