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임한 오승걸 평가원장 “학생들 볼 면목이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10일 15시 00분


“수능 가채점 보고받고 영어 예상치에 충격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 난이도 오락가락 해”

10일 사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진행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10일 사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진행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당일에 가채점 결과를 보고받은 뒤 (영어 영역 1등급 비율 예상치가) 너무 충격적이라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논란으로 10일 사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사진)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출제기관장으로서 학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 스스로 거취를 결정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날 오 원장은 평가원 보도자료를 통해 “영어 영역 출제가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지 못해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입시에 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번 수능에서 영어 영역 1등급 응시자 비율은 3.11%로 절대평가로 전환된 2018학년도 이후 가장 낮았다. 올해 영어는 응시자 4% 이내에 들면 1등급을 받는 다른 상대평가 과목보다도 낮아 4일 채점 결과가 나온 뒤 비판이 잇따랐다. 역대 평가원장 12명 중 9명이 문항 오류 등을 책임지고 중도 사퇴했다.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로 사임한 건 오 원장이 처음이다.

● 평가원장 “학생 볼 면목 없어” 사임

10일 사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10일 사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오 원장은 “평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만 나가는 게 비겁한 거 아닌가 고민했을 뿐 국민이 속상해하는데 기관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출제는)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 아이들(수준)에 따라, 출제자에 따라 난이도가 오락가락한다”며 “수능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구축하면 출제를 신속하게 하고 오류 점검하고 정답률 예측 등을 할 수 있어서 그 작업을 내부적으로 시도하는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오 원장은 전임 이규민 원장이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으로 사임한 뒤 2023년 8월 중등교사 출신으로는 처음 선임됐다. 평가원은 2024학년도 수능부터 현직 고교 교사들로 구성된 공정 수능 출제 점검단을 운영해 출제진이 만든 문항에서 ‘킬러 문항’ 포함 여부를 판단하게 했다. 이번 수능에서도 공정 수능 출제 점검단을 운영했지만 ‘불(火)영어’ 논란을 낳았다.

문책성 경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열된 영어 사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가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는데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절대평가로 전환한 수능 영어가 어렵게 출제돼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원장 잔혹사’라는 말도 다시 돌고 있다. 오 원장을 포함해 역대 평가원장 12명 중 9명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2021년 12월 강태중 전 원장이 생명과학Ⅱ 20번 오류로 사퇴하는 등 대부분 출제 오류로 사임했다. 이 전 원장은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말라’는 대통령 지시를 수능 모의평가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어 물러났다.

●교육부 출제 과정 조사, 제도 개선 마련

교육계에서는 평가원장 사퇴에도 대입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탈락하고 정시모집에서도 지원에 어려움을 겪는 수험생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의 고3 수험생 학부모 김모 씨는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로 수시에서 탈락하고 정시에도 불합격해 결국 재수한다 해도 책임 질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인 영어 난이도 조절을 두고 논란이 큰 가운데 교육 당국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 뉴스1
절대평가인 영어 난이도 조절을 두고 논란이 큰 가운데 교육 당국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 뉴스1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수능 출제와 검토 전 과정 조사를 마치고,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 원인과 개선책을 발표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교육부와 평가원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국무조정실 주도로 수능 관리 체계 전반 조사와 책임 규명,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교육 당국은 고심이 크다. 절대평가 취지에 맞춰 영어 1등급 비율을 10%로 설정해 출제해도 매년 수험생 학력 수준이 다르고 6월 9월 수능 모의평가 응시없이 수능을 치르는 N수생 등 변수가 많아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아서다.

이번 수능도 현장 교사들이 모두 ‘킬러 문항’이 없다고 검증했는데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출제진 중 현장 교사 비율을 높여 이미 45% 정도로 과거보다 높다. 평가원장 사퇴와 출제 과정에 대한 조사가 반복되며 ‘누가 무서워 출제하겠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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