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할매들이 만든 손글씨 응원 스티커… 가슴에 착착 붙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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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눔] 시니어와 함께하는 사회적기업
손 글씨 문구 만드는 ‘신이어마켙’… 평균 연령 84세 어르신이 창작 활동
소셜 브랜드 ‘링크앤라이프 릴리’… 향초 교육 받은 어르신 8명이 제작
행복나래, 안정적인 판로 개척 돕고… 디자인-품질 등 경쟁력 향상 지원

신이어마켙의 인기 상품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손 글씨를 활용한 스티커와 메모지 등이다. 맞춤법이 틀리고 그림이 비뚤어졌어도 어르신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게 특징이다. 신이어마켙 제공
신이어마켙의 인기 상품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손 글씨를 활용한 스티커와 메모지 등이다. 맞춤법이 틀리고 그림이 비뚤어졌어도 어르신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게 특징이다. 신이어마켙 제공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만아’,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적당이 해라’, ‘부모님 말씀을 잘 듯고 생활하여라’.

문장 곳곳에 맞춤법에 어긋난 오타가 보이지만, 정감이 느껴진다.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이 운영하는 브랜드 ‘신이어마켙’이 판매 중인 스티커에 적힌 문구들이다. 제품명은 ‘할매할배 손그림 손글씨 리무버블 스티커’. 가장 고령자가 92세, 막내는 80세, 평균 연령 84세인 어르신 창작자들이 직접 쓴 글씨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등에 붙였다 뗄 수 있는 스티커를 만든 것.

한글을 익히지 못했던 어르신도 있고 틀린 맞춤법을 평생 옳다고 여겨 온 어르신도 있는 만큼 신이어마켙은 어르신들이 창작한 문구를 그대로 담아 제작한다. 브랜드 이름에 들어간 ‘신이어’도 시니어라는 영어를 모르는 어르신들이 되물었던 말에서 따왔다. 온라인을 통해 스티커를 구입한 사람들은 “진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주는 응원 같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국이 지난해 12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에 진입하면서 시니어의 경제적 자립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과 시니어가 협력하며 시니어들이 창작자로서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도 주목받고 있다.

● 시니어가 창착자로 제품 제작

신이어마켙을 운영하는 심현보 대표는 친할머니의 친구분들이 폐지를 줍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상황인 것을 마음 아파하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적기업을 세웠다. 처음에는 참여자로 복지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부터 우선 선정하고 저소득층 노인까지 확대했다. 현재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80세 어르신도 원래는 기초 수급 지원 대상이었지만 “젊은 친구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내가 지원받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어려운 사람이 지원받게 하고 싶다”며 참여하게 됐다.

신이어마켙은 청년 디자이너가 제품을 기획하고 시니어들은 제작과 포장을 한다.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손 글씨를 활용한 스티커, 엽서, 달력, 메모지, 노트 등의 문구류가 주력 상품이다. 시니어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상품을 제작하며 창작자로 활동한다. 시니어들은 1주일에 두 번, 하루 2∼4시간씩 일하는데 몇 년째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근 전날이면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설렌다”며 웃는다.

심 대표는 “어르신들이 어딘가에 소속돼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며 “우리 회사에 청년은 9명으로 어르신보다 많다.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이 일하다 보니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링크앤라이프 릴리는 충남 천안시 남산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향초와 디퓨저 등을 판매한다. 향초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들이 직접 향초를 만드는 모습. 링크앤라이프 릴리 제공
링크앤라이프 릴리는 충남 천안시 남산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향초와 디퓨저 등을 판매한다. 향초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들이 직접 향초를 만드는 모습. 링크앤라이프 릴리 제공
비유니크가 운영하는 소셜 브랜드 링크앤라이프 릴리는 충남 천안시 남산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향초, 디퓨저, 룸스프레이 등을 판매한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강민서 대표는 지역의 어르신이 직접 참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모델을 고민하다가 향초를 제작해 보기로 했다. 참여를 희망하는 어르신을 무료로 교육해서 향초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게 했고, 지금은 청년 3명은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시니어 8명은 제작을 맡고 있다.

환갑을 넘긴 어르신이 가장 젊고 가장 연장자는 87세로, 이들은 일을 하며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낀다. 강 대표는 “어르신들이 자신이 만든 거라고 자녀들에게 자랑하는 등 굉장히 뿌듯해 한다”며 “수익을 많이 창출하기 위한 경제적인 부분보다 정서적으로 도움 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 행복나래, 사회적기업 판로 개척 도와

사회적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링크앤라이프 릴리는 행복나래가 운영하는 사회적 가치 상품 전문몰 소백마켓@브랜드에 입점했다. 이곳에서 링크앤라이프 릴리는 더 많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노출시키며 시장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신이어마켙은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대한민국 사회적 가치 페스타에 참여하며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를 확대했다. 페스타에서는 행복나래가 기획하고 지원한 사회적 가치 마켓이 운영됐다. 이곳에서 전국의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약 40곳이 방문객들에게 제품을 체험해 보게 하고 사회적기업의 의미를 알렸다.

SK가 설립한 구매 서비스 회사인 행복나래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수익 전액을 쓰고 있다. 조민영 행복나래 본부장은 “사회적기업에 단순히 유통 채널을 제공하는 것에서 넘어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사회적기업과 대기업의 협업 기회를 확대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기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강 대표는 “우리 제품이 사회적기업 제품이라서 사야 한다는 게 아니라 좋아서 사고 싶은 제품이 되도록 제품 디자인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대표도 “시니어들이 만든 제품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 생산 마케팅을 모두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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