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절수설비’ 없이 물 콸콸… 말 뿐인 규정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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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후 신축은 설치 필수… 물 배출 분당 5L 이하로 줄여야
서울-부산-울산-경남 64곳 중 설치 현황 파악한 지자체 없어
전문가, 규정 현실화 필요성 지적

17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절수설비 업체 관계자가 수도를 틀어 배출되는 물의 양을 점검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17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절수설비 업체 관계자가 수도를 틀어 배출되는 물의 양을 점검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17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 세면대 수도를 틀자 1분 동안 12.5L의 물이 쏟아졌다. 수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의 경우 수압 98kPa 기준으로 1분에 5L 이하만 나오도록 절수설비를 갖춘 수도꼭지를 써야 한다. 또는 배출되는 물의 양을 줄이는 절수기기를 수도꼭지에 달아야 한다. 절수설비 의무 설치 규정은 생활 속 물 절약으로 수자원 고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됐다. 동행한 절수설비 업체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가 절수설비 설치를 명령하지 않았기에 학교가 관련 규정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며 “물 절약을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본의 아니게 물 낭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에 얇은 판이 들어간 너트 형태의 절수기기를 설치하자 흘러나온 물의 양은 분당 5L 이하로 줄었다.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동아일보가 서울, 부산, 울산, 경남의 64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관내 건축물의 절수설비와 절수기기 설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절수설비를 정기적으로 관리하거나 설치 실태를 파악 중인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일부 지자체는 행정복지센터와 도서관 등 직접 관리하는 몇몇 건물의 절수설비 설치 자료를 제공했으나 관내 전체 건물의 설치 현황을 파악 중인 곳은 없었다. 수도법 제15조는 2001년 이후 신축된 모든 건축물과, 그 이전이라도 물 사용량이 많은 업종(숙박·목욕·체육시설)과 공중화장실의 수도꼭지와 변기에는 절수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기초지자체는 이를 확인하고 미설치 시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기초지자체들은 절수설비가 제대로 설치돼 실제 사용되는지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건축물 인허가 때 시험성적서 등 서류로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한 번 설치한 절수설비를 떼어내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보고 별도 현장 점검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절수설비 담당 공무원은 한 명이고, 여러 업무를 함께 맡고 있어 현장을 찾아 설치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건물마다 수압이 달라 절수설비 설치 유무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부 관계자는 “측정을 위한 기준 수압이 98kPa인데 수압이 300kPa을 넘어서는 건물도 있다. 절수설비가 설치됐다 하더라도 기준보다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절수설비 설치 의무 규정을 담은 수도법이 2001년 도입돼 20년 넘게 지난 만큼 관련 지침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상근 한국수도경영연구소 부소장은 “전국 모든 건축물이 아니라 물 부족이 심각한 지역의 모든 건물에 절수설비를 설치하고, 연간 물 절약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며 “이후 정책 확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값이 지나치게 싸기 때문에 자발적인 절수가 어렵다”며 “요금 현실화와 절수설비 기준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절수설비#지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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