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행정안전부가 경북 청송에서 개최한 2025년 전국 청년마을 만들기 발대식. 12대 1을 넘는 경쟁률을 뚫고 올해 12개 새내기 청년마을로 선발된 전북 ‘장수트레일빌리지’ 김영록 대표는 ‘당신에게 청년마을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대표는 트레일러닝을 주업으로 하는 주식회사 락앤런 대표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어떤 간절함이 그를 청년마을 조성사업에 뛰어들게 했을까.
“행안부 청년공동체활성화 사업을 시작으로 전북도 등의 지원사업에 힘입어 장수 트레일러닝 대회와 규모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장수에는 여전히 청년이 부족합니다. 대회를 위해 수천 명이 방문하지만, 청년은 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수라는 천혜의 자연에 청년들이 머무르게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대회를 여는 것을 넘어, 청년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 수는 없을까.”
2025년 행안부 청년마을 사업에 합류한 새내기 대표들. 앞줄 왼쪽 세 번째가 전북 장수 트레일빌리지 김영록 대표. 앞줄 왼쪽부터 용수진(보성), 이금재(제주), 김영록(장수), 박영민(거창) 뒷줄 왼쪽부터 정현우(광주), 김도경(부여), 엄경환(고성), 박찬웅(울릉), 이만수(대구), 정여울(통영), 서선아(무주) 대표. 충북 음성 박화정 대표는 일정이 있어 촬영에 참석하지 못했다. 청송=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은 그 간절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었다. 트레일러닝을 좋아하는 청년이 여행처럼 머물다, 일처럼 자리잡을 수 있는 곳, 지역과 청년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 ‘장수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장수에서 장수하는 트레일 빌리지’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 대표는 “길 위에서 더 많은 청년들과 함께 숨 쉬고 웃고 꿈꾸고 싶다”며 “작은 트레일 한 걸음 한 걸음이 장수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되어 장수에서 도전하는 삶을 그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녹차로 유명한 전남 보성군의 ‘ ‘전체차랩(All+차+LAB)’ 용수진 대표는 “나에게 청년마을은 사람”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영상연출을 전공하고 6년 동안 방송계에서 일했던 그는 ‘번아웃’에 이르렀고 지난해 새로운 길을 찾기로 했다.
“언제 쉴지 모르는 살인적인 일정과 날카로운 언어가 가득한 방송 현장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병원을 찾는 날이 늘었습니다. 불안이 연속된 삶을 마주하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지도를 펼친 뒤 ‘수도권에서 떨어진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지역’을 찾다가 처음 방문한 곳이 보성이었고 그곳 사람들 속에서 치유를 받고 정착을 선택했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어제를 잊고 사람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개인사를 다른 청년들과 나누기 위해 청년마을 조성 사업에 지원한 것. 이 마을에선 차를 활용한 한식 양식 디저트 등 식품과 친환경제품을 개발하고 방문 청년들에게 밭에서 직접 녹차 수확하고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 보는 지역살이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용수진 대표. 본인 제공. 강원 고성의 ‘고루 멕이는 마을’ 엄경환 대표는 “제가 생각하는 청년마을은 ‘느리게 자라는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했다. 청년이 씨를 뿌리고 청년의 자식들이 수확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고성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청년마을 조성사업에 합류했다. 참가자들이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와 여행, 축제를 기획하고 반려견 관련 창업아이템 발굴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왜 ‘고루 멕이는 마을’이냐고?
“동네 최고참 해녀분이 수확량이 적어 실망하는 막내해녀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걱정 마, 바다는 고루 멕여’. 세상에서 가장 강아지랑 살기 좋은 동네, 어촌도 청년도 강아지도 고루 멕이는 청년마을이 되도록 만들겁니다.”
경남 통영에서 ‘섬바다음식학교’를 운영하게 된 정여울 대표는 “나에게 청년마을은 밥이다”라며 “꼭꼭 씹어서 온전히 소화시켜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섬바다음식학교는 섬과 바다의 삶과 철학을 기반으로 해산물 비즈니스 창업가를 양성한다. 진입장벽이 높은 수산업에서 도전적인 청년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경남 거창에서 ‘고라니 워크 앤 런’을 운영하게 된 박영민 대표는 “나에게 청년마을은 ‘혁명’이다”라고 했다. 그는 “나와 대한민국의 청년들, 세계의 청년들이 삶에 농업과 자연을 통한 관계의 전환점을 만드는 ‘혁명’으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5년 청년마을 만들기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게임을 함께 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 청송=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이들을 포함해 제주, 전북 부여와 무주, 경북 울릉 등에도 청년마을이 조성되어 2018년 시작된 행안부 청년마을 식구는 지난해 39개소에서 51개소로 늘어났다. 올해 12개 마을을 탄생시킨 지방자치단체에는 대구와 광주 두 대도시도 포함됐다. 대구 ‘북성로공구마을’을 운영하게 된 이만수 대표는 “북성로 공구골목에 기술과 예술 생태계 활용을 통한 청년들의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창업과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에 ‘서남예술촌’을 운영하게 된 정현우 팀장은 “서남동 인쇄거리를 중심으로 청년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마을을 만들겠다”며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사람을 이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청년과 지역의 문제를 예술로 풀어낼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부터 3일 동안 청송에서 진행된 발대식에는 ‘선배’ 청년마을 대표와 운영진, 전문가 등이 참석해 ‘후배’들을 응원하고 지식과 경험을 전수했다. 전남 순창에서 지역활성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주식회사 힙컬 장재영 대표는 “즐거운 일을 함께 할 동료를 찾아 취향 공동체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충남 공주에서 마을경험 설계회사 퍼즐랩을 운영하고 있는 권오상 대표는 “마을 내부와 외부, 청년마을 사이, 중앙과 지방정부 등과의 효율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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