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영상 제작 ‘게임 체인저’ 생성형 AI… ”지난달 출시 구글 AI ‘비오3’
입모양까지 맞춰 오디오도 생성… “실제 잡음까지 구현해 소름”
부천영화제 ‘AI 영화’ 감독들… “인건비 등 제작비 크게 줄었다”
“개발에 온라인 영상 대량 학습”… 원창작자 권리 침해 해결해야
기자가 구글의 인공지능(AI) 영상 생성 플랫폼 ‘Veo3’로 만든 8초짜리 영상의 한 장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 복장을 입은 한 한국인 남성 배우가 고대 로마에 가는 영상을 만들어줘.”
지난달 출시된 구글의 인공지능(AI) 영상 생성 플랫폼 ‘Veo3’(비오3). 비오3에 영어로 이 문장을 입력하자, 약 2분 만에 8초짜리 영상이 만들어졌다. 영상엔 고대 로마 시대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배경에 오징어 게임 속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남성이 등장했다.》
영상 속 남성은 거리를 걷다가 자연스러운 한국어 발음으로 “여기 어디예요?”라고 외쳤다. 이윽고 옛 로마의 복장을 한 주변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이게 다 뭐예요? 왜 다들 이상하게 입고 있어요?”라며 궁금한 표정까지 지었다. 입 모양이나 표정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텍스트 한 줄로 음성까지 구현된 완성도 높은 영상이 겨우 몇 분 만에 만들어졌다.
생성형 AI는 과연 어디까지 갈까. 위 사례처럼 벌써 비디오뿐 아니라 영상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음성, 효과음, 배경음악 등까지도 한 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상 제작 기술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도 AI 영상 생성 플랫폼을 가지고 ‘고퀄리티’ 영상을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이에 AI 영상 플랫폼이 향후 영화나 드라마, 광고 제작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영상 플랫폼인 비오3는 최근 국내외 영상 제작자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AI 영상 생성 플랫폼이 급속히 발전해 왔지만, 다양한 언어 등 오디오까지 통합해 구현한 건 비오3가 처음이다.
특히 비오3는 등장인물이 발화(發話)하는 상황에 맞는 어조, 억양, 높낮이 등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현해 영상의 맥락을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사가 없는 영상이라도 상황이나 장소에 어울리는 효과음과 소음, 배경음악 등이 주문에 따라 자동으로 삽입된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을 감성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줘’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카메라가 여성 주변을 도는 듯한 동적인 비디오와 함께 어울리는 음악까지 입힌 영상이 만들어진다. 라면을 먹는 ‘1인 먹방’ 영상을 주문하면 면발을 먹는 ‘면치기’ 소리까지 매끄럽게 구현된다.
비오3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만들어 봤다는 한 누리꾼은 “실제 CCTV 영상을 틀었을 때 나오는 묘한 잡음까지도 담겨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앞서 만들어 본 영상에서도 오징어 게임 복장의 숫자와 한글이 살짝 어색한 점을 빼면, 여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완성도를 보였다.
현재 유료 구독(첫 달 무료) 형태로 서비스되는 비오3에서 제작 가능한 영상의 길이는 최대 8초. 하지만 비오3와 이미지 생성에 특화된 AI 모델 이마젠(Imagen) 등이 통합 적용된 영상 작업 툴 ‘구글 플로우’에선 생성된 여러 짧은 영상(클립)을 만들어 이어 붙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도 프로 영화 제작자처럼 긴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구글은 요금제별로 생성 가능한 클립의 개수를 약 10∼125개로 제한하고 있는데, 향후 AI 모델을 업데이트하며 1회 생성 시 가능한 영상의 길이를 늘릴 계획이다.
이 밖에 오픈AI의 Sora(소라)와 Runway(런웨이), Pika(피카), Kling(클링) 등 다른 AI 영상 생성 플랫폼도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모으는 ‘과거 시간 여행’ 영상도 거의 이런 AI로 생성한 것이다. 현대인이 19세기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나 여행 유튜버처럼 행동하는 영상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조선을 방문하자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담은 영상 등을 AI는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 AI 영화, 예술 장르로 발돋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제작한 영화 ‘고해성사’에서 휴머노이드가 신부를 찾아가 “나도 고해성사를 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제공실제 영화에서도 AI를 활용한 사례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로 29회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3∼13일)는 지난해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했다. 올해는 세계 각지에서 출품된 작품 350편 중 11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7일 찾은 영화제 ‘AI 컨퍼런스’에선 관객 2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채 다양한 방식으로 AI가 활용된 영화를 관람하고, 창작자들과도 만났다. 이날 연달아 상영된 작품 6편은 각각 전쟁과 종교, 미래 도시 등을 주제로 했는데 표현 방식도 다채로웠다. 일반 단편영화와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지만, 마치 유화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연이어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 같은 작품도 있었다.
완성도 면에서도 AI 영화는 일반 영화와 그다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AI로 영상을 생성한 영화 ‘라스트 드림’은 핵전쟁이 발발해 미사일이 폭발하고 지구 곳곳이 불타는 장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듯한 장면을 웬만한 기존 영화보다 더 실감나게 구현했다. 관객 사이에선 “상상력을 표현한 방식이 신선했다”는 평이 나왔다.
특히 로이 오 감독의 AI 영화 ‘컬러 오브 마이 가든’을 본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젠 AI 영화 속 등장인물이 감성에 호소하는 연기를 보이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그린 25분 분량의 이 영화는 주인공의 육체적 장애와 고통스러운 삶, 실연의 아픔 등을 작가의 그림처럼 진한 색채의 화풍으로 스크린에 펼쳐 냈다. 다만 몇몇 영화는 등장인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신체 움직임이 어색할 때가 있어 영화별로 편차는 있었다.
공세원 부천국제영화제 전문위원은 “AI 영화라고 해서 뭔가 특이하거나 미흡한 구석이 있다는 편견이 있는데, 요즘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이미 넘어서 하루하루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제작비 99% 줄어… 안 쓸 이유가 없다”
김운하 감독은 이 영화제에 AI로 만든 영화 ‘곰팡이’를 출품했다. 김 감독은 원래 영화, 광고업계에서 일하다가 지난해부터 AI 영상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AI 영화 제작을 두고 “일반 영화 제작과 비교하면 인건비 포함 제작비가 99%는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완벽하게 멸균된 미래를 배경으로 빵에 피어났던 곰팡이가 사회 구석구석과 사람 몸속으로 퍼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그려냈다. 실사 촬영으로는 쉽지 않은 이런 상상의 표현은 “AI라 가능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유명 영화 감독처럼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고성능 장비를 쓰고, 컴퓨터그래픽(CG)도 잘 구현했다면 제 영화보다 뛰어난 실사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장면을 AI를 통해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AI와 실사 각각의 강점을 살리는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앞으로 더 훌륭한 영화들이 나올 겁니다.”
장권호 감독은 미래에 한 휴머노이드가 성당의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다는 AI 영화 ‘고해성사’를 연출했다. 장 감독은 “처음 AI를 쓸 땐 평생 작업해 온 영화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20년 전부터 머릿속에 떠돌던 시나리오를 혼자서 돈도 별로 안 들이고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했다.
“성당, 인물 등을 원하는 대로 구현하기 위해 며칠 동안 한 장면을 계속 만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반 영화였다면 몇 달 걸릴 일을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었죠.”
● 저작권·학습 콘텐츠 등 숙제도 많아
하지만 다른 생성형 AI와 마찬가지로, AI 영상 생성 역시 원창작자의 권리 침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미 경제매체 CNBC 등은 구글이 유튜브에 존재하는 방대한 영상을 비오3 등 AI 모델 학습에 활용했다고 보도했다. 구글 관계자는 “전체가 아닌 일부 영상만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어떤 영상이 사용됐는지, 원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았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CNBC는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 잡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생성형 AI를 사용한 창작물 제작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할 위험이 따른다”고 분석했다. AI가 영상 속 인물의 얼굴, 목소리 등을 학습해 활용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침해할 우려 역시 제기된다.
AI 영상 생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선 이 같은 법적·윤리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선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 전문위원은 “영상 생성 AI를 만든 글로벌 기업들은 학습한 콘텐츠의 공개를 꺼리고 있으나, 사실 드러난 데이터는 모두 잠재적 학습의 대상이라고 봐야 한다”며 “원창작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적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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