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괴물폭우 대응 어떻게
시군 단위 경보, 마을 단위 발령을
도심엔 ‘대심도 빗물터널’ 마련
공무원 과잉대응 불이익도 없어야
21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외정마을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피해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산청=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내가 산청에서만 90년 넘게 살았는데 살다 살다 세상 천지에 이런 비는 처음이라카이. 죽을 뻔했다 아인교.”
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만난 주민 최모 씨(92)는 19일 쏟아진 폭우 상황을 설명하며 고개를 저었다. 산청에는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798mm의 폭우가 내리며 산사태가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닷새 사이 쏟아진 폭우는 지난해 산청군 전체 강수량(1513.5mm)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집중되는 ‘극한호우’가 잦아지면서 수해 대응 체계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 배수·저류시설 기준, 100mm이상 비 못견뎌
17일 충남 서산시에는 시간당 114.9mm의 비가 내리며, 기존 최대치인 시간당 104.5mm(1999년)를 넘어섰다. 같은 날 광주의 일일 강수량은 426mm로, 1939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1974년 3회에 불과했던 여름철 시간당 50mm 이상 폭우는 지난해 31회로 증가했다.
뉴노멀(일상화)이 된 극한 폭우에 맞춰 하천 용량, 대피 체계 등을 전반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홍수 대응 기준의 재조정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배수·저류시설은 과거 강수 기준에 맞춰 설계돼 최근의 집중호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체로 시간당 80mm를 최대 강우로 보고 시설을 설계하고 있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제 시간당 1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는데 기존 하천 설계와 도시 계획 기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과다 설계처럼 보일 정도로 여유 용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과 구성원의 특성을 반영한 호우 대응 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 기상청의 호우 경보·주의보는 시군 단위로 발령된다. 특정 마을의 실제 위험을 반영하기 어렵다. 19일 산청군의 산사태 경보는 인명 피해 발생 1∼2시간 뒤에야 주민에게 전달됐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호우와 산사태 위험 시 산촌 주민들은 사전 대피가 최우선”이라며 “마을마다 지형과 강수 패턴, 구성원의 나이대 등 종합적인 특성을 반영해 사전 대피를 돕는 안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들은 과잉 대응에 대한 사후 민원을 우려하는 만큼, 이들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추가 배수시설 필요
전문가들은 대심도 빗물터널 등 도심 배수 여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심도’는 도로 아래 약 40m 지하에 대형 관로를 설치해 시간당 100mm 이상 폭우를 일시 저장·배출하는 방식으로, 서울 신길동 일대 침수 방지에 효과를 본 바 있다. 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빗물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은 모두 활용해야 한다”며 “놀이터, 학교 유휴지 등 가능한 모든 공간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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