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상승 뒤 지반 건조…다시 내린 비에 붕괴 위험 커져
전문가들 “복구보다 대피 우선…지자체 선제 조치 시급”
뉴시스
호남·경남권 등에 집중된 호우로 전국 이재민이 3000명을 넘겼다. 폭염과 반복된 폭우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사태·침수 등 2차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구보다 선제적 대피와 감시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3일부터 남부지방에 집중된 폭우로 전국 7개 시·도에서 3000명 이상이 긴급 대피했다. 이날 오전까지 이재민은 총 2130세대 3009명으로 집계됐다. 전남 무안에서는 60대 남성이 물에 휩쓸려 숨졌고, 무안 한 곳에서만 289.6㎜의 비가 내렸다.
광주, 담양, 산청, 하동 등 다른 지역도 200㎜ 안팎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국립공원 263개 구간과 하천변 128곳, 도로 59곳 등이 통제됐고, 호남선 일부 열차와 여객선 운항도 중단됐다.
특히 이번 비는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로 이미 피해를 입었던 지역에 다시 집중되면서 지반 붕괴나 구조물 파손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당시 폭우 뒤 이어진 폭염에 이어 또다시 많은 비가 내리면서 지반이나 구조물이 더욱 쉽게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기온이 올라 땅이 바짝 말랐다가 갑자기 많은 비를 맞으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흙이 쉽게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지반 붕괴, 옹벽 붕괴, 싱크홀 위험성이 모두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지반은 단단했다가도 수분이 들어오면 느슨해지고 그 상태가 반복되면 점점 더 약해진다”며 “여름철 말미인 9월에 싱크홀이 집중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피해 지역 상당수가 7월 폭우로 이미 침수나 토사 유입을 겪은 곳으로 파악됐다. 문현철 호남대 교수(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는 “1차 폭우로 지반이 이미 수분을 머금고 있었는데 다 마르기도 전에 다시 비가 오면 위험이 배가된다”며 “특히 산사태나 옹벽 붕괴 같은 위험 지역은 지역 재난관리단위에서 촘촘하게 감시체계를 가동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도 “생명은 대피로 지키는 것이고 복구는 재산 문제”라며 “공공은 복구와 예방, 민간은 재난 상황에서 대피와 자구책을 병행해야 한다. 모든 걸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반 붕괴는 뚜렷한 징후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주민들이 평소 자신이 사는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이해하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문 교수는 “주민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형과 지리적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위험을 상상하고 대피를 준비해야 한다”며 “특히 경사진 산자락에 인접한 지역은 집중호우 예보가 나오면 지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먼저 판단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험 징후는 육안보다 기상예보가 더 확실하다”며 “시군구 단위에서 호우 예보와 동시에 대피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호우 피해는 산간뿐 아니라 광주 시내, 전남 무안 하천변 등 도심에서도 크게 발생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도심에선 하수받이나 배수시설이 일시적으로 막혀 차량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역 단위의 정비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며 “특히 저지대, 반지하 주택은 집중호우가 예보되면 즉각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주 교수는 “피해를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렵고 얼마나 인명 피해를 줄이느냐가 관건”이라며 “정보가 공개돼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주민 모두가 위험을 미리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기상청은 오는 6일부터 중부 내륙을 시작으로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보고있다. 충청 이남 지역에는 최대 100㎜ 이상의 강수 가능성과 함께 집중호우가 재차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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