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사람을 불러모은다… 인구-경제 살리는 ‘녹색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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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시프트, 숲이 바뀌어야 사람도 산다] 2부 〈4〉 지역 살리는 ‘숲 관광’
3대가 가꾼 하동 편백숲 군에 기부… 지역 인구 6배, 연 2만 명 넘는 발길
숙박-외식업 등 지역경제 활력… 인제 자작나무 숲, 울진 금강송 숲 등
일자리 창출하고 지역 경제 살려… “숲이 지역 정체성, 균형발전 기반 돼”

21일 경남 하동군 편백나무 숲에서 김동광 씨(74)가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김 씨는 2015년 가족들이 키운 숲 일부를 하동군에 기부했다, 군은 기부받은 숲을 휴양림으로 꾸몄고 매년 2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숲을 찾고 있다. 하동=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21일 경남 하동군 편백나무 숲에서 김동광 씨(74)가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김 씨는 2015년 가족들이 키운 숲 일부를 하동군에 기부했다, 군은 기부받은 숲을 휴양림으로 꾸몄고 매년 2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숲을 찾고 있다. 하동=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관광객들이 ‘편백나무가 기가 막히게 좋다’ 이렇게들 말씀하세요. 그럼 제 자식이 칭찬받은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내가 틀린 선택을 한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21일 경남 하동군 옥종면 편백나무 숲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김동광 씨(74)가 말했다. 편백숲은 김 씨 가족이 아버지로부터 아들까지 3대째 가꿔온 숲이다. 김 씨는 2015년 이 숲 가운데 축구장 42개 규모인 30.4ha를 하동군에 기부했다.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숲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동군은 이 숲을 ‘하동 편백 자연휴양림’으로 조성해 2020년 7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휴양림에는 숲길 5.9km와 숙박시설·글램핑장·트리하우스 등이 들어섰다. 연일 많은 관광객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숲을 찾고 있다.

● 지역 인구 6배 넘는 관광객이 숲 찾아

김 씨 가족은 원래 모래만 있던 민둥산을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바꿔냈다. 김 씨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귀국 후 사업으로 모은 자금으로 민둥산 일대를 산 후 1966년부터 숲 가꾸기에 나섰다. 197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35만 그루를 심어 현재 79ha 규모, 축구장 110개를 합친 크기의 숲을 만들었다. 지금은 높이 15∼20m, 둘레 1m에 이르는 대형 편백나무 약 20만 그루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숲을 키운 공로로 김 씨 아버지는 1995년 대통령 표창을, 2000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 씨 가족은 자신들이 가꾼 숲을 지역사회에 개방했다. 김 씨는 “좋은 산을 가족만 누리긴 아까웠다”며 “많은 사람과 함께하면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매일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방문객은 2022년 2만1742명, 2023년 2만2926명, 2024년 2만6271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휴양림이 위치한 옥종면 인구(4032명)의 6배를 넘는 수치다. 조용한 산촌은 관광지로 변모했다.

숲은 지역경제에도 파급효과를 주고 있다. 주민들은 농사 외에 관광업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생활 인구’도 늘었다. 생활 인구는 정주 인구 외에 관광·업무 등으로 월 1회 이상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사람을 뜻하는 개념이다. 군 관계자는 “휴양림은 하동군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며 “방문객 증가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숲 관광지, 441억 원 생산유발 효과

숲을 관광지로 개발해 인구와 경제가 살아난 사례는 하동만이 아니다. 강원 인제군의 자작나무 숲도 대표적인 사례다. 산림청이 1970∼90년대 조성한 이 숲에는 자작나무 7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2012년 개방 이후 매년 30만 명이 찾는다. 이는 인제군 인구(3만956명)의 10배에 달한다. 산림청 추산에 따르면 자작나무 숲의 생산유발 효과는 441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는 332명에 이른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숙박업·외식업·농산물 판매가 동시에 살아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인제군 전체 인구는 최근 10년간 줄었지만 자작나무 숲이 있는 인제읍은 오히려 인구가 늘었다. 2015년 6월 9235명이던 인제읍 인구는 2025년 6월 9852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제군 전체는 3만3139명에서 3만939명으로 감소해 대조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21∼2024년 방문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했다. 휴대전화 이동 자료 7200만 건, 신용카드 사용 1억8000만 건, 신용정보 8억1000만 건을 종합한 결과, 인제군 전체 방문객 중 최대 27.6%가 자작나무 숲을 다녀갔다. 자작나무 숲 관람객 소비의 19.4%는 인제군에서 이뤄졌다. 식비(44.0%)와 물품 구매(49.1%)가 대부분이었다. 식비 비중은 숲을 찾지 않은 일반 방문객보다 1.7배 높았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 숲은 산림청이 지정한 세계적 산림관광지로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가며 울진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충북 괴산군의 산막이옛길 숲길 역시 2010년 개방 이후 매년 100만 명 이상을 유치하며 소멸 위기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관광산업의 확장이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의 중요한 단서로 본다. 이수광 산림과학원 산림휴먼서비스연구과 연구원은 “숲은 단순한 생태 자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생활 인구를 끌어오는 핵심 기반”이라며 “앞으로는 숲 관광을 지역 교육, 문화, 복지와 결합해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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