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특검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법원이 27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건 구속 수사가 필요한 정도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에 합법적 외관을 만들어줄 의도로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했다는 특검 주장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국무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등 불법 비상계엄에 합법적 외관을 만들어줬다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法, ‘비상계엄 적법한 외관’ 논리에 “다툴 여지”
2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 계획을 전달받은 뒤 “국무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엔 한 전 총리를 포함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박성재 전 법무부, 김영호 전 통일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있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참석 대상자 중 이들을 제외한 13명 중 6명만 불렀다고 한다. 6명 중에서도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안덕근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국무회의 개의 정족수인 11명이 채워지자 회의를 열었고 5분 남짓 만에 회의를 끝냈다.
이어 정부서울청사로 돌아온 한 전 총리는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시경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결의된 사실을 사무실에서 확인했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이 계엄 해제 국무회의를 소집하지 않자 한 전 총리는 오전 2시경 용산 대통령실로 찾아가 윤 전 대통령에게 계엄 해제 국무회의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계엄해제 국무회의는 한 전 총리 주재로 같은 날 오전 4시 30분 열렸고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건 비상계엄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법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한 전 총리의 주장대로 국무위원들을 모아 계엄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 설득하려 했다면 윤 전 대통령이 부른 장관 6명 중 2명이 도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장관들을 기다리자”며 국무회의 개의를 반대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해제 이후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만든 사후 계엄 선포문에 서명하는 등 불법 비상계엄에 적법해 보이는 외관을 씌우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 특검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측은 “국무위원들이 모여 반대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것”이라고 구속영장심사에서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올 2월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계엄을 선포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돼선 안 된다는 반대 의사를 말씀드린 것”이라며 “대외 신인도와 같은 지금까지 이뤄온 국가의 핵심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했다”고 증언했다. 한 전 총리는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배경에 대해 “국무위원들이 좀 모여서 대통령을 설득해 주면 좋겠다고 하려 했던 것”이라며 “당시는 통상의 국무회의와 달랐고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했다.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할 권한을 가진 윤 전 대통령이 개의 2분여 만에 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통보한 뒤 나가버려서 국무위원들이 제대로 된 반대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 法 “방어권 행사 차원 넘어선 증거인멸 우려 없어”
법원은 한 전 총리가 특검 수사 당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문을 받았다”며 진술을 일부 번복한 것에 대해서도 “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계엄 선포문을 봤느냐”는 민주당 의원 질의에 “선포 당시엔 인지를 못 했고 국무회의를 마친 뒤 사무실에 가서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자신이 문건을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챙겨 나오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수사기관이 확보한 뒤 최근 특검에서 “당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선포문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와 수사 진행경과, 피의자의 현재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검이 이미 국무회의에 참여했던 장관 다수를 불러 조사하는 등 상당 부분 수사가 진척돼 증거가 확보돼 있고, 현직이 아닌 한 전 총리가 이들과 적극 말을 맞출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피의자의 경력, 연령, 주거와 가족관계, 수사 절차에서의 피의자 출석 상황, 진술 태도 등을 종합하면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한 전 총리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찰과 특검의 수사를 거부하지 않고 협조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영 특검보는 28일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특검은 밝혀진 사실관계에 기반해 형사법적 기준에 따라 법적 평가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특검보는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10월 유신이나 (신군부의) 5·17과 같이 권력을 가진 자의 비상계엄은 권력 독점과 유지를 위한 것이었고 권력의 주변자들은 방임이나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며 “과거와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데 국민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특검은 영장 기각 사유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한 전 총리에 대한 기소 여부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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