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애인 의무고용, 복지부도 안 지켜서 10년간 5억 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6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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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정책 주무 부처인 복지부
2015년 이후 8차례 의무고용률 미달

“1년 넘게 일자리를 못 구했어요. 정부까지 외면하는 것 같아 막막하네요.”

16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장에서 만난 지체 장애인 박모 씨(34)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박람회장은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 수백 명이 몰려 붐볐다.

16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장에 많은 참가자가 몰려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고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정부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현행 3.8%에서 2029년 4%로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장애인 정책 담당인 보건복지부가 최근 10년간 의무 고용을 지키지 못해 총 5억 원이 넘는 부담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억2900만 원의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냈다.

현행법상 의무 고용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고시하는 장애인 부담금 부담 기초액에 근거해 미달 인원수만큼 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2015년과 2023년을 제외하고 매년 의무 고용률에 미달했다.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3.8%였지만 복지부의 실제 근로자 고용률은 3.6%에 그쳤다.

다른 중앙부처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전체 장애인 고용 부담금 규모는 279억 원에 이른다.

일각에선 법정 부담금의 기준액이 낮아 ‘값싼 면죄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금이 최저임금의 60~100%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채용보다는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기관이 많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장애인을 채용할 만한 일자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비판도 나온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고용 시스템에 장애인을 맞추다 보니 일부 사업장은 배정된 직무와 무관한 잡무를 맡기게 되는 등 엇박자가 난다는 얘기다. 나운환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장애인 대상 임용 과정을 따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쿼터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장애인 취업박람회장에 많은 참가자가 몰렸다. 고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그러는 사이 장애인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자폐성 장애 3급인 고은철 씨(32)는 “비장애인과 의사소통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편견 탓에 취업 길이 막힐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장애인취업지원기관 관계자는 “그나마 일할 만한 자리는 제한적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 고용률 상향, 퇴직 등에 따른 결원 충원 시차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용률이 낮았다”며 “제도 개선과 추가 채용을 통해 상황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최보윤 의원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단순 권고사항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무”라며 “법정 부담금이 공공기관의 고용 회피를 정당화하는 면죄부처럼 작용한다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의원은 “장애인들이 채용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일 없도록 직무 적합성을 고려한 채용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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