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1∼6월)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이 교수 800여 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당초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9월에는 국립대병원 교수 217명이 사직했다.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서울대병원 등 전국 10개 국립대병원(분원 포함)에서 받은 ‘2025년 국립대병원 교수 채용 및 사직 인원’ 자료에 따르면 10개 국립대병원은 상반기 806명을 뽑겠다고 채용공고를 냈으나 372명(46.2%)만 채용했다.
병원들이 채용 목표치를 채우지 못한 가운데 국립대병원에 근무하던 교수들의 사직도 이어졌다. 올해 1∼9월 10개 국립대병원에서 사직한 교수는 217명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 교수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졌고 결국 223명이 그만뒀을 때와 비슷한 규모다.
국립대병원 교수들이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는 높은 근무 강도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국립대병원은 법정 한도 내에서만 의료진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어 민간병원과 비교할 때 급여 수준이 낮은 편이다.
의료계에서는 3차 의료기관인 국립대병원의 인력난이 계속된다면 비수도권에서는 권역 내 ‘최종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국정과제로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권역 거점병원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로 이관되면 별도 산하 기관으로 분류해 인건비 법정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립대병원 사직 교수 39% 필수과… “지방 더 심각, 의료공백 우려”
“개원하면 당직 안서도 2배 벌어”… 민간과 달리 인건비 한도 정해져 ‘스타교수’ 영입하기도 쉽지 않아 국립대병원 10곳중 9곳 자본잠식… 인프라 투자 못한채 존폐 기로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분원 포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사직한 교수 217명 중 85명(39.2%)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필수 진료과목이었다. 서울대병원은 본원에서만 올해 내과 교수 13명이 그만뒀다.
● 사직 교수 5명 중 2명은 필수과 소속
국립대병원의 교수진 이탈이 계속되는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과 높은 근무 강도가 꼽힌다. 충청권 국립대병원 교수는 “국립대병원 교수 연봉은 최대 2억 원 수준인데, 사직하고 개원을 하게 되면 당직을 서지 않고도 2배를 벌 수 있다”며 “나가지 말라고 잡기가 민망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한 국립대병원은 인력 부족으로 병원장이 직접 이식 수술을 주 1회 집도하고 있다. 이 병원은 올해 상반기 흉부외과 교수 3명을 모집했으나 2명만 채용하는 데 그쳤다.
‘워라밸’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교수직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하면서 향후 국립대병원의 인력난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상권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국립대병원 교수가 되려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3, 4년을 마친 뒤 전임의(펠로) 1, 2년을 해야 하는데 펠로 지원율이 감소하고 있다”며 “현재 교수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은퇴한 뒤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은 민간 병원과 달리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어 ‘스타 교수’를 영입하기도 쉽지 않다.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다. 기타 공공기관은 ‘총액 인건비’의 적용을 받는데, 이 한도 내에서 의료진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 병원만큼의 급여를 제시하며 의료진을 영입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정규 교수직을 포기하고 촉탁의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국립대병원이 지역의료, 필수과, 공공의료의 중심으로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상권 국립대병원 필수과 교수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를 더 채용하려고 해도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향하지 않고 지역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의료의 질을 높이려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는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 국립대병원 10곳 중 9곳 자본잠식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이탈하면서 국립대병원 10곳 중 9곳이 자본 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립대학병원협회는 지난달 25일 대통령실에 건의문을 보내 “국립대병원의 기초체력을 회복시켜 달라”며 “전체 10개 국립대병원 중 2개가 완전 자본잠식, 7개가 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처할 정도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밝혔다.
국립대병원은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기초 인프라 투자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비수도권 국립대병원 부원장 출신인 한 교수는 “일부 국립대병원은 본관이 1960년대 건물이라 시설이 낙후돼 있는데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며 “병원이 자체 여력이 없다 보니 정부 지원으로 장비 일부를 교체하고, 정말 낡은 부분만 리모델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연말까지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총액 인건비 제한을 풀어 ‘스타 교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더 이상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선 안 된다. 이 같은 내용을 결정하는 기재부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는 연 1회 열리는데 내년에는 1월로 예정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진료 부문 적자에 대한 보전 방안 등은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 조정을 통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국립대병원 교수 사직은 단순 인력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료 공백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문제”라며 “정부가 국립대병원 부처 이관을 넘어 적자, 의료인력 이탈 등에 대한 장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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