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젊어 보이는 40대,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가 몇 달째 화제다. 처음 이 말이 등장했을 때는 젊은 패션과 소비, 취미를 즐기며 활기차게 산다는 긍정적 이미지로 쓰였다는데, 언제부턴가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을 뜻하는 조롱의 뉘앙스가 덧붙었고 요즘엔 온라인상에서 각종 밈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 7, 8년 전에도 있었던 ‘영포티’ 비판
사실 이전의 영포티가 내내 긍정적인 의미였던 건 아니다. 과거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영포티를 비판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젠더적 시각에서의 비판도 있었다. 영포티라는 단어가 성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영포티라고 하면 ‘남성’을 떠올린다. 2017년 통계청이 영포티를 ‘새로운 아재 문화’와 연결 지어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기사나 칼럼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20대 여성 사회 초년생과 사랑에 빠지는 서사를 지적하며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을 타자화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지금도 영포티를 비판할 때면 흔히 ‘20대 여직원이 날 좋아하나 착각하는 40대 상사’의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영포티가 다시 비난의 표적이 된 이유로 청년 세대의 위기감이 지목된다. 가진 것 없는 20대들이 “젊음마저 침범당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갖춘 40대 중년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청춘을 상징하는 ‘젊음’이 40대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확장되자, 그에 대한 반감이 혐오로 표출된 셈이다.
피규어 팝업 매장. 피규어 뒤로 이를 구경 중인 남성들이 보인다. 동아일보DB ● 피규어 즐기는 ‘키덜트’…영포티,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냐
물론 40대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영포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나이키·아디다스·마블 같은 브랜드는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소비해 온 문화 코드이기 때문이다. 젊음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젊을 때 향유하던 문화를 계속 소비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항변처럼 젊게 살고자 하는 중년 문화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키덜트(kidult)’로 불리는 소비층이 시장의 큰 축을 차지했다. 젊은 문화를 넘어 과거 어린이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게임, 장난감, 캐릭터 굿즈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어른들이다. 실제 요즘 이들 매장에 가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훨씬 많다. 레고 매장만 봐도 유아용 ‘듀플로’ 제품을 제외하면, 일반 제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사람 대부분이 어른들이다. 닌텐도, 피규어, 프라모델, 보드게임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많다. 내 주변에도 청소년들의 전유물 같던 취미를 즐기는 40대가 많다. 모바일 게임은 물론, 컬러링북 채색, 애니메이션 굿즈 수집, 미니어처 가구 만들기까지 다양하다.
삶의 주기가 늦춰지면서 이런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만혼과 늦은 출산으로 인생 주기가 전반적으로 지연되면서, 과거 ‘아저씨’로 불리던 30대는 청년, 40대는 젊은 아저씨가 됐다. 20년 전만 해도 40대라 하면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오고 ‘애가 둘 이상 딸린’ 가장의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지금의 40대는 다르다. 배가 나오지 않은 건 물론이고 결혼하지 않은 경우도 태반이다. 고령화로 한국의 중위연령도 30대 초반에서 45세로 상승했다. 이제 40대는 사회의 중심 세대다. 과거 청년들의 자리를 그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모습. 동아일보DB● 진짜 ‘영’한 아동청소년들 놀이 문화는 사라져
중장년층이 ‘영’한 문화로 넘어오는 새,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영’한 세대인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이런 놀이 문화에서 밀려났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놀이 시간이 국제적으로 매우 짧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은 모든 아동이 연령에 맞는 휴식과 놀이,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놀이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아동의 전인적 성장과 행복을 위한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2024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하루 여가 시간은 평균 1시간 32분으로 5년 전보다 더 줄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평일 자유시간이 1시간 미만인 학생 비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는 9~17세 아동 중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42.9%였지만, 실제로 놀았다는 비율은 18.6%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실제 요즘 놀이터만 봐도 종일 썰렁하다. 그나마 아이들이 모이는 시간은 오후 8시 넘어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때다. 학원을 전전하느라 그 시간이 돼야 겨우 자유시간이 나는 것이다. 밤 9시에 퇴근할 때, 그제야 가방을 메고 귀가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적잖이 본다.
밤 늦게 학원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동아일보DB● ‘정규수업 외에도 4시간 이상 공부’…놀 시간 없는 韓 아이들
지난해 여성가족부 ‘사교육 참여 및 시간’ 통계에서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78.5%였고, 초등학생의 경우 10명 중 약 4명(40.2%)이 정규 수업 후 하루 3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학습시간’ 통계에서도 지난해 초·중·고 학생의 정규 수업 외 학습(방과후 수업, 학원수업, 과외, 자습 등) 시간이 “4-5시간”이라는 비율이 10.4%, “6시간 이상”의 비율도 3.7%에 달했다.
아동청소년들이 놀 공간도 부족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데려갈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주말마다 어디 놀러갈지 찾는 게 숙제다. 중학생이 된 우리 첫째가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가는 곳은 노래방이나 영화관, 방탈출 카페 같은 상업시설이다. 성인들을 위해 만든 공간에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서비스가 덧붙은 것이지, 아동청소년을 위한 놀이 공간이라 할 수는 아니다. 지자체 역시 유아용 놀이시설을 확충하고 있는 데 반해 청소년을 위한 공간엔 관심이 적다.
● 아이들 줄어들며 생긴 문화·경제적 공백, 어른들이 메워
이렇게 아동·청소년의 입지가 좁아지는 사이, 그들의 인구도 급감했다. 1990년대 초 0~14세 인구가 약 1400만 명이던 것이 현재는 600만 명 미만으로, 30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문화와 소비의 빈자리를 어른들이 채웠다. 어쩌면 영포티로 대표되는 ‘젊음화(化)’와 ‘청춘화’ 현상은, 아이들이 줄어들며 생긴 문화적·경제적 공백을 메우려는 산업계의 전략과 어른 세대의 욕망이 맞물린 결과일지도 모른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젊음의 불균형’이 영포티라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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