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제왕적 거대여당은 누가 견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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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통법부(通法府)가 돌아왔다. 유신독재나 전두환 독재를 영화로나 접한 세대는 실감 못할 것이다. 그 시절 국회는 한심한 통법부였다. 삼권분립은커녕 ‘거수기 국회’ ‘고무도장’ 심지어 ‘시녀’ 소리를 듣는, 대통령과 한 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에서 대한민국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자랑했다. 그러나 개딸 아닌 다수 국민의 눈에 거대여당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삼권분립과 협치 따위는 개나 주라는 게 이 정부 국정철학인 모양이다. 3대 특검 관련 여야 합의를 하루 만에 뒤집고 단독 처리하더니 검찰청 폐지 같은 우리 삶에 엄청 영향 미치는 정부조직법도 지들끼리 통과시켜버렸다.

아무리 ‘이재명의 민주당’이 윤석열의 황당무계한 불법 계엄으로 쉽게 정권을 잡았다 해도 이쯤 되면 제왕적 입법부다. 거대여당이라고, “선출권력 서열이 최고”라고 대통령이 말했다고,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가짜뉴스 같은 녹취를 들이대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는 “당당하면 수사 받으라”는 건 조폭 뺨치는 행태다. 누가 멀쩡한 사람을 도둑이라 누명 씌우면서 “당당하면 수사 받으라”고 한다면, 이런 나라가 어디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나.

● ‘대화와 타협’은 민주화의 산물이다
1987년 12월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환호하는 대구 동구 신룡동 마을 주민들이 노 전 대통령 생가 마당에 모여 축하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우리에게도 국회가 대화와 타협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결과 출범한 1988년 여소야대(與小野大) 때다.

나도 자료를 뒤져보고 새삼 놀랐다. 여소야대는 민주화의 산물이었다. 관권선거·고무신선거·막걸리선거가 판치던 1950년대, 60년대는 여당 의석이 과반 이상인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유신독재 때는 대통령 박정희가 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유신정우회로 채웠다. 전두환 독재 때는 지역구 의석에서 1위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독식하는 선거법이 있었다. 거대여당이 존재하는 국회는 다수결로 뭐든 통과시키는 통법부였다.

87년 12월 지금의 헌법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88년 4월 민정당의 총선 성적은 299석 중 125석! 1여3야 구도에서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였다. “수적 우위에 의한 집권당의 일방적 독주와 강행이 허용되던 시대도, 소수당의 무조건 반대와 투쟁의 정치가 합리화되던 시대도 지나갔다.” 노태우 대통령은 13대 국회 개원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 ‘3당 합당’으로 투쟁의 정치가 이어져

실제로 국회법 개정이 여야합의로 이뤄지면서 의석수에 비례한 상임위원장 배분이 13대 국회부터 시작됐다(그 전엔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독식). 2020년 총선에서 거대여당이 된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은 독재시대의 전례였던 것이다(여당이 이례적 승리를 거둔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라고 본다). 광주청문회와 5공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이 청문회에 섰던 5공 청산 과정도 여야 협상의 결과였다. 시대의 과제를 국회가 풀어냈던 것이다.

1990년 열린 3당합당 축하연에서 만세를 하고 있는 당시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노태우 대통령 겸 당 총재, 김종필 최고위원.(왼쪽부터) 동아일보 DB
그런데 어쩌랴. 우리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정당정치가 1990년 1월 22일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으니. 바로 그날 민정당 총재 노 대통령-민주당 총재 김영삼(YS)-공화당 총재 김종필(JP)이 3당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217석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명분은 안정적 국정운영이다. 결과는 여당 독주-야당 강경대응, 국회 파행이었다(이현우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반응’).

더 심각한 점은 3당 합당 이후 여소야대에서의 경로 이탈이 우리 정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최준영 ‘3당합당: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정치 전개의 분기점’). 정치라는 영역은 경제 같은 다른 영역에 비해 징글징글하게 안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학자들은 ‘경로의존성’을 지닌다고 한다). YS와 DJ는 총선에서 과반을 못 얻고도 반성은커녕 딴 데서 의원을 빼와 여대야소를 만들어 독주하다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야당과 대화와 타협은커녕 여대야소 만들 능력도 없어 파면당한 두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윤석열은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 민주당 DNA에 새겨진 ‘강경투쟁’

3당 합당 당시 평민당이던 지금의 민주당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경투쟁’이 DNA에 깊숙이 새겨졌다. 여당이 된 지금도, 대표 정청래도 싸움질이 체질이다. 사법부 수장까지 끌어내릴 기세다.

3당 합당으로 고립됐던 그들은 자신들만이 정의롭고, 저들은 천하의 악마라고 믿는다. 소수야당 때든, 다수 야당 때든 무조건 강경투쟁으로 여당의 밀어붙이기를 유도한다.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집권 가능성이 높아져서다(안 그러면 ‘수박’된다). 이렇게 집권한 대통령이 문재인, 이재명이었다.

7월에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첫 기자회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래서일까. 이 대통령은 7월 기자회견에서 이랬다. “국회가 여소야대가 돼 버리면 거의 할 수 있는 게 크지 않다. 전임 대통령은 힘들어하지 않았나. 아마 되게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여대야소로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이 약화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말까지 했다.

● 삼권장악한 문 정권, 정권재창출 실패했다

다행이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제왕적 대통령은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러나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보면 지금은 ‘제왕적 의회’ 시대다 싶다.

윤석열은 V0 김건희한테 꼼짝 못했을지언정 거부권을 행사할 줄 알았다.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쓸 일이야 없겠지만 정청래의 민주당을 견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명-청대전에서 명나라가 청나라를 가라앉히는 듯하다 손 들어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3대 특검 단독 처리도 사실 청나라 승리라는 뒷말이 파다하다.

이달 한 행사에 참석한 조희대 대법원장. 동아일보 DB
이 대통령은 알았으면 한다. 제왕적 의회를 견제하고, 이 대통령이 목놓아 외치는 억강부약을 할 수 있는 헌법기관이 바로 사법부다. 온갖 사법리스크에 얽힌 이 대통령은 대법원장부터 갈아치워 사법부를 장악하고 싶을지 모른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첫해 그런 행운을 누렸다. 집권 3년차 총선에선 180석의 대승까지 거뒀다.

삼권을 장악한 문 정권은 폭주했다. 그리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했다. 다수 국민은 당신들보다 현명하다. 벌써 질린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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