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 건의사항 초안 마련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위한 포석
비금융업-투자일임업 확대도 담겨
은행권이 4일 출범하는 새 정부에 가상자산업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건의안을 내기로 방침을 세웠다. 가상자산 관리, 보관 등 부수 업무를 넘어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시중·인터넷·특수은행 등 정사원(정회원) 은행 23곳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달 말 ‘은행권의 주요 건의사항’ 초안을 마련했다. 은행권에서 개선이 시급하다고 여겨지는 사항들을 새 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하기 위해서다.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는 점을 고려해 은행권이 공통된 의견을 모아 전달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초안에는 △가상자산업 진출 허용 △비금융 진출 확대 △투자일임업(고객의 자금을 받아 대신 운용하고 수수료를 받는 업) 허용 범위 확대 △신탁 제도 개선 △보이스피싱 통합 분석 시스템 구축 △은행법상 제재 사유 구체화 등이 포함됐다. 이들 중 은행의 업무 범위에 가상자산업을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핵심으로 꼽힌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제외한 나머지 요구 사항들은 은행권이 오랫동안 희망해 왔던 ‘해묵은 과제’들”이라며 “사실상 가상자산 시장에서 ‘헤게모니’(주도권)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제언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라 투자자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원화 거래를 하려면 은행의 실명계좌를 받아야 한다. 이에 빗썸-KB국민은행, 업비트-케이뱅크, 코빗-신한은행 등 가상자산 거래소와 은행권의 전략적 제휴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가상자산 관리, 보관 등 수탁 업무를 직접 맡을 순 없다. 현재 법적으로 은행의 업무 범위에 가상자산업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은 실명계좌 제공이라는 수동적인 역할을 넘어, 가상자산 업무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송금 등에 침투하면서 기존 제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주요 은행권들은 컨소시엄 형태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에서도 관련 법령이 마련되는 대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려는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예금 잔액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 은행들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은행권이) 금융결제원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가 취합한 이번 건의사항에는 ‘비금융업 전면 허용’도 포함됐다. 은행들은 부수 업무의 범위가 좁아 핀테크처럼 유통, 여행, 정보기술(IT) 등으로 사업 확장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자산관리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게 은행권의 투자일임업을 전면 허용하는 요청도 건의사항에 담겼다. 현재 증권·자산운용사는 본업과 투자일임업을 겸하는 게 가능하지만 은행은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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