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유럽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시작하는 등 ‘유럽 안보 지형’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 속에 최근 유럽에선 미국의 지원 없이도 지역 안보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안보 자강론’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고려할 때 현재 유럽의 독자적인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하며, 현실적인 ‘방위 독립’ 달성에는 최소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23일(현지 시간) 독일 연방의회 총선이 끝난 후 베를린 당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총선 승리로 차기 총리에 취임할 가능성이 높은 메르츠 대표는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 달성”을 촉구하며 유럽의 자체 방위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를린=AP 뉴시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 “(유럽의) 독립적인 군대, 공군, 핵무장에는 막대한 대가가 따른다”며 “유럽이 미국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되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이 당장 자체적인 사단을 구축해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병력 부족 △나토 자체 방어에 생길 공백 △미국에 의존한 군사작전 등의 이유에서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전투 능력을 갖춘 여단을 각각 1개씩 편성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병력 부족’ 문제를 꼬집었다.
또 우크라이나 파병 시 유럽 각국의 병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수밖에 없다. 예컨대 영국은 파병을 위해 이미 준비 태세가 갖춰진 ‘나토 신속대응군’ 내 부대를 활용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나토의 전쟁 대비 계획에 공백이 생긴다는 것. 여기에 정보나 방공망을 미국의 군사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의 특성상 미국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 때문에 유럽이 미국의 도움 없이 현재의 전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방위비 증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현재도 나토의 전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GDP 3% 국방비 지출’이라는 목표를 대다수 회원국이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지원 없이 전력을 갖추기 위해선 “GDP의 4%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돈을 마련하기도 어렵지만, 무기와 인력을 충원해 군사 역량을 전환하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나토를 지휘 및 통제, 조정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토의 군사 조직 최상단에 있는 유럽동맹군최고사령부(SHAPE)를 이끄는 나토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SACEUR)은 현 크리스토퍼 카볼리처럼 늘 미군 소속이었다. 매슈 사빌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벌인 공중전 같은 규모·강도의 복잡한 작전을 유럽이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미국이 유럽에 제공해온 핵우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뗀다면 러시아 깊숙이 닿을 수 있는 전략적 핵무기와 유럽 공군이 탑재할 수 있도록 유럽에 배치하는 ‘준전략적’ 핵무기를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공감대가 모이고는 있으나, 현재 영국·프랑스의 핵탄두 수량은 400기 수준으로 러시아(1700기 이상)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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