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도중 영상까지 틀며 ‘남아공 내 백인 학살’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의 백인 차별을 주장해왔는데, 이를 상대국 정상에게 공격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파국으로 치달은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이어 트럼프의 일방주의 외교를 보여주는 단면이란 지적이 나온다.
● 남아공 대통령 면전에서 ‘백인 학살’ 주장 영상 상영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양국은 이날 경제 협력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예고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재진에서 “남아공에 백인 학살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남아공 내 백인 학살 의혹을 담은 영상 상영을 지시했다.
백악관 조명을 끈 뒤 상영된 영상엔 흑인 정당 운동가가 “보어인(네덜란드계 백인)을 죽이자”라고 외치는 장면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흰색 십자가 늘어선 영상을 보며 “백인들의 무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길 원한다”라며 라마포사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집단 살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백인 농부들”이라며 “그들은 남아공을 떠나고 있다. 이것은 슬픈 일”이라고 주장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예고되지 않은 영상 상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영상 내용이 실제와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는 백인 살해 위협에 대해선 “소수 정당 대표 주장에 불과하며 정부 입장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백인인 민주동맹(DA)의 존 스틴헤이즌 농무장관을 임명했다면서 인종 차별 논란에 반박했다. 스틴헤이즌 장관은 “과격 정치인들의 발언을 막기 위해 남아공이 정치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번 회담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자원 공유와 투자, 무역 협력 등을 논의하길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내 백인 살해 위협 문제로 주제를 돌린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백인 보수층 지지 확대를 노리고 전략적으로 라마포사 대통령과 설전을 벌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백악관에서 상영된 십자가 영상은 실제 묘지가 아니라, 농장 살인에 항의하고 백인 시위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만든 가짜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 트럼프, 남아공과 악연 이어가…토지 수용법 두고 반발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백인 인권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여오면서, 반(反) 남아공 정부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남아공에서 열리는 G20 외교장관 회의 불참했는데, 이는 남아공 정부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DEI)을 회의 주제로 정한 것을 두고 불만을 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내 백인 활동가들과 면담하면서 갖게 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또 남아공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집단 학살 혐의로 제소한 것을 두고서도 격분했다.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남아공 정부의 토지수용법이 인종 차별이라는 이유로 원조를 중단키로 했다. 남아공 토지 수용법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 추구를 위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데, 투기 목적 토지 경우엔 무보상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 점이 문제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내용이 남아공 토지 대부분을 점유한 백인들을 겨냥한 조치라고 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에는 미국 측 조치를 비난하는 워싱턴 주재 남아공 주재 대사를 추방 조치했다. 남아공 내에서도 해당 조항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어 실제 무보수 수용은 시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 회담 중에도 해당 조치를 겨냥해 “당신(라마포사 대통령)은 그들(흑인 운동가)이 땅을 빼앗도록 허용하고, 그들은 땅을 빼앗을 때 백인 농부를 살해한다. 그들이 백인 농부를 살해해도 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라마포사 대통령은 “범죄로 희생되는 사람은 백인만이 아니며, 대다수는 흑인”이라고도 강조했다.
NYT는 이번 정상회담 설전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인권 문제에 대한 선택적 관심도 드러났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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