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종전 80주년을 맞아 준비해 온 개인 메시지를 발표하지 않는 쪽으로 조정 중이라고 2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지난달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연립 여당이 참패한 뒤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총리 퇴진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메시지 발표가 당내 보수파의 반발을 추가로 불러올 수 있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달 29일 태평양전쟁 격전지였던 이오시마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지금까지 전후 60년, 70년 등 시점마다 평화를 염원하며 다양한 형태로 메시지를 전해 왔다”며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향한 생각을 담아 준비해 나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각의 결정이 필요한 정부 차원의 ‘종전 80주년 담화’가 아닌, 유력 전문가로 구성된 개인 자문기구를 설치해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게 된 경위를 검토하고 총리 개인 자격으로 메시지를 내는 방안이었다.
당시 발표 시점이나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오는 15일이나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에 문서 형태로 발표하는 방침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종전 50주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 ‘마음에서 우러난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2005년 종전 60주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종전 역사의식을 계승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2015년 종전 70주년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역대 내각이 반복해서 표명해 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난 사죄의 마음은 앞으로도 흔들림 없는 입장”이라며 “아이들과 손주, 이후 세대 아이들이 계속 사죄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세 번의 담화문은 모두 각의 결정을 거쳐 발표됐다. 자민당 보수파는 ‘아베 담화 이후 새로운 담화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권 내부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메시지를 발표할 경우 총리 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이 이를 구실로 삼아 퇴진 요구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시바 총리 역시 “지금 시점에 역사 인식이라는 미묘한 주제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측근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종전 80주년이라는 분기점에 총리를 맡고 있다는 의미를 잘 생각하고 싶다”며 가을 이후 당내 정세를 주시하며 검토를 이어나갈 의향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 총리는 오랫동안 당내 비주류로 활동했고, 역사의식도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