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지게차에 결박당한 이주노동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5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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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고용허가제 비자(E-9)는 전문 기술 없이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꿈의 비자다.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한국어 학원 다니고 비싼 응시료 내가며 시험 쳐서 비자 신청을 한다. 지원자가 많아 4, 5년을 기다렸다는 젊은이도 있다. 스리랑카 출신 A 씨(31)도 지난해 12월 E-9 비자로 입국했을 땐 ‘코리안 드림’에 가슴이 부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 같은” 일을 당했다.

▷A 씨가 취업한 곳은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이다. 스리랑카, 동티모르, 중국 출신 노동자 10여 명이 일하는데 평소 한국인 간부가 상습적으로 욕을 했다고 한다. 올 2월엔 동료 스리랑카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게차에 결박당해 끌려다니는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동료 이주노동자가 찍어 뒀다 최근 시민단체에 제보한 58초짜리 영상엔 가혹 행위와 한국인이 “잘못했다고 해야지” 하고 조롱하며 웃는 목소리가 나온다. A 씨는 “수치스러웠다. 마음이 다쳤다”고 했다.

▷국내 이주노동자는 미등록(불법) 노동자를 포함해 144만 명이 넘는다. 대개 한국인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고된 일을 하는데 이 중 17%는 정부 실태조사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부 고용주들의 문제라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비인격적 대우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농어업의 경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깎는 일도 있다고 한다. 깻잎을 하루 1만5000장 땄다는 외국인도 있다. 최근엔 폭염 속에 일하던 20대 베트남 남성이 앉은 채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공사장엔 혹서기 단축 근무가 시행 중이었지만 외국인은 열외였다고 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전체 노동자보다 2배 이상 높다(국가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의 65%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쓴다. 숙소에 잠금장치가 없거나 방마다 비밀번호가 똑같아 폭행의 위험을 호소하고, 냉난방 시설이 부실해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동사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의 일터에서도 부당한 갑질이 벌어지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말이 서툴러서, 해고당할까 참고 넘어간다. 작업장과 숙소가 외진 곳에 있어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밖에선 알기 어렵다.

▷지게차에 묶인 피해자를 보며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다녀온 남성의 회고 글이 떠올랐다. 사우디 발전에 기여해 번 돈으로 집안 빚 갚고, 동생 대학 보내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을 줬다며 “사우디에서의 노동이 새삼 고맙다”고 썼다. 벽돌 공장 사장의 사과와 단골 식당 주인의 따뜻한 밥상으로 기운을 차린 스리랑카인 A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 고향에 있는 약혼녀와 결혼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노동도 자부심과 감사함으로 떠올리게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가혹 행위#차별#비인격적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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