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코로나로 잃은 시간, 이제라도 책임져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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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정책사회부장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청춘은 밀(密)한 시간인데,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서…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

2022년 8월, 일본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고시엔) 우승기를 품은 스에 와타루(須江航) 센다이 이쿠에이고 감독의 우승 소감이다. 전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고교야구 우승 감독의 ‘청춘은 밀하다’는 소감은 그해 일본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일본 사회 전체에 울림을 줬다. 3년 가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으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못 한 청춘들에게 바치는, 어른으로서의 미안한 고백이자 사과였다.

아이들에게 혹독했던 코로나 방역

어른의 시간과 청소년의 시간은 밀도가 다르다. 어른에게 3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3년은 학창 시절 전부이자 인생 기반을 쌓는 결정적 시기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안 된다’는 말만 들었던 중고교생의 3년은 입학부터 졸업까지를 통째로 아우른 시간이었다.

추억과 낭만 문제가 아니다. 마땅히 확보했어야 할 학업 시간을 잃은 후유증은 지금도 뚜렷하다. 지난해 중3, 고2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고2 국어 기초 학력 미달 비율이 9.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때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대면 수업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면서 문해력과 사고력이 저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를 되돌아본다면 놀랄 일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학교는 서둘러 교문을 닫았다. 집단 감염 뉴스가 나올 때마다 수도권에서 수십, 수백 곳의 학교가 등교를 중단하고 개학을 연기했다. 그해 내내 수도권은 제한적 등교와 원격 수업을 오락가락하며 파행적 학사 운영을 이어갔다. 전면 등교는 2021년 말에야 이뤄졌지만, 이듬해까지 수업은 온전하지 못했다. 마스크 의무 착용으로 초등 저학년의 언어 학습이 더디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일주일간 학급 전체가 통째로 원격 수업을 했다.

코로나19 초기 민첩한 대처는 평가받을 만하지만, 주요 연령대 가운데 호흡기 바이러스에 제일 강한 아이들이 3년 가까이 코로나 방역의 중점적 대상이었다는 건 지금 보면 아이러니다. 당시는 원격 수업으로 된다고 했지만, 책과 교과서를 읽고 교실에서 선생님 칠판 글씨를 보고 수업을 들으며 집에서 숙제를 풀어오는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었다는 게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드러났다.

빈부 격차는 아이들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 중산층 이상은 학교에서 기르지 못한 ‘공부 근육’을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으로 어찌어찌 학원과 과외를 통해 보완했다. 하지만 공교육 말고는 대안이 없던 아이들은 PC, 스마트폰에 의존하다가 쇼츠와 게임에 중독됐다. 단순한 학습 격차를 넘어 교육 불평등과 계층 격차를 동시에 증폭시켰다.

지금이라도 잘잘못 따져봐야

지금이라도 묻자. 우리는 정말 과학적 근거에 따라 방역 정책을 올바로 펼쳤는가. 커피숍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학교는 못 가게 했던 그때 방역은 과연 옳았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농밀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왜 그리 가혹했는가.

기성세대는 코로나 시절을 추억으로 회상하지만, 학창 시절을 통째로 날려 버린 아이들에게 방역 후유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방역을 주도했던 책임자는 선거 운동 전면에 나서더니 다른 자리도 아닌 대한민국 보건복지 정책 수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라도 잘잘못을 따져봐야 한다. 사고가 나면 진상 규명을 외치면서 유독 K방역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 이게 옳은가.

#코로나19#고교야구#방역정책#학업성취도#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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