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뼈를 취하려 살을 내어준 관세 협상국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8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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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막무가내식 미국의 관세협상 압박에 대응하는 주요국들의 행보 중 외교가에서 주목해온 나라가 호주다. 호주 정부는 미국이 철강 관세를 50%까지 올린 것에 대해 “부적절한 조치이자 경제적 자해”라고 공개 비판했고, 소고기 규제를 풀라는 요구에는 “생물 주권(biosecurity)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이달 중순 호주의 독립적 결정을 강조하며 진행한 연설을 놓고는 ‘반미(反美)적’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한국 외교관들은 “동맹국치고 진짜 세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반발 감수하고 민감 품목 시장 열어

호주는 서구 5개국 정보연합체인 ‘파이브 아이즈’ 멤버이자 오커스(AUKUS) 회원국으로 미국과는 안보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이미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소고기를 콕 찍어 압박하니 배신감과 서운함도 배가됐을 터이다. 앨버니지 정부는 “우리 소고기에 고율 관세를 매기면 맥도널드 햄버거 패티가 비싸져서 결국 당신들 손해”라며 이른바 ‘햄버거 외교(burger diplomacy)’를 비롯한 각종 대응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랬던 호주 정부가 최근 미국산 소고기 수입 규제를 해제한 것은 현재 진행 중인 협상에서 의약품과 철강, 알루미늄에 부과될 관세를 낮춰보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는 10%로 지금도 최저 수준이지만, 핵심 품목에 50%에서 최대 200%까지 예고된 관세율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앞서 협상을 타결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합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쌀과 콩 같은 농산물 수입 확대를 포함해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안을 받고 관세율을 낮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품목을 건드리는 건 이들 나라에도 사회적 반발을 부르는 민감한 현안이었다.

한국 또한 조선업 협력과 대규모 투자 외에 협상 품목에 농산물을 포함시키기로 하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의 경우 광우병 발병 가능성 같은 안전 문제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의 우려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이명박(MB) 정부에서 겪었던 광우병 관련 사태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부분이 더 크다. 축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피할 수 없겠지만, 상품에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임을 명기해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법 등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냉혹한 국제질서 속 진행되는 협상에서 하나도 뺏기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부(國富)에 더 핵심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관세 협상이 끝은 아닐 것임도 확실하다. 이번 고비를 넘더라도 안보 정책에서 더 까다롭고 때로 당혹스러운 제2, 제3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할 것이다. 통상과 함께 패키지로 테이블에 올린 군사안보 이슈들도 민감도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한반도 전구(戰區) 통합 논의는 단순한 숫자 조정을 넘어 동맹의 구도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사안들이다.

큰 것을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해야

그때의 원칙도 결국은 같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함께 치른 유일한 동맹국을 상대로 ‘내 살을 베어 내주고 당신의 뼈를 끊겠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 같은 결기를 부릴 것은 아니나, 어차피 ‘윈윈’할 수 있는 협상판이 아니라면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내어줄 수도 있다는 전략의 기본은 가져가야 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임기는 아직 3년 반이 남았다.

#미국 관세#호주 대응#파이브 아이즈#햄버거 외교#군사안보 협상#광우병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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