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80주년, 韓 성취 기반에 한미동맹 있어
‘트럼프 2.0’에 자유무역-자유주의 붕괴 중
강대국 간 4차 ‘그레이트 게임’ 한반도 강타
최대 자산 한미동맹 고도화가 번영 잇는 길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2025년 광복 80주년, 대한민국은 선진 강국으로 격상됐다.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은 피와 땀으로 이룬 천지개벽의 성취다. 한국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류의 본향(本鄕)이자 매력국가다. 광복 80주년 ‘세계 속 대한민국’의 약진은 단군 이래 최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굳건한 한미동맹이 그 바탕에 자리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다.
그런 자유무역과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는 ‘제국 미국’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의미한다. 천문학적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미국은 강대국 외교로 돌아가 패권국 지위를 지키려 한다. ‘트럼프 이후’에도 장기 지속될 가능성이 큰 흐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정립한 유엔 기반 국제 질서인 ‘주권과 영토의 존중’이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 천하대란 한가운데서 25일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댔던 한국의 국정 문법은 낡아버렸다. ‘이재명·트럼프 회담’은 한국의 새로운 국가 대전략과 국정 운영술을 국제 사회에 증명하는 현장이다. 오늘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 대처하려면 역사철학과 국제정치학적 통찰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레이트 게임은 세계 제국과 지역 강국들이 얽힌 거시적 전략 경쟁을 가리킨다. 제국 경영의 경험이 없는 우리 선조들은 그레이트 게임을 알지 못했다. 1883년 조미 수교 1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한 조선보빙사 일행은 미 대통령에게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미 대통령이 당혹해했음은 물론이다. 고종은 그 1년 전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거중조정’ 조항을 구국의 방책으로 기대한다. ‘제3국과 분쟁 발생 시 미국이 중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 어두운 데다 자강(自强)하지 않는 약소국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건 전략적 사고의 기초다. 필사적인 부국강병과 유연한 동맹 관계에 입각한 국가 대전략이야말로 그레이트 게임의 핵심이다. 동아시아에서 그레이트 게임은 네 차례 펼쳐졌다. 수·당 제국과 일본이 참전한 한반도 삼국지가 1차(676년), 명 제국, 조선, ‘해 뜨는 제국’ 일본이 사투를 벌인 임진왜란이 2차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1592년)이다.
미-소-중-일이 개입한 남북한 전쟁이자 세계 내전이었던 6·25전쟁은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작동하던 시절 발생한 3차 그레이트 게임(1950년)이다. 반면 오늘의 미중 패권 경쟁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붕괴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4차 그레이트 게임이다. 트럼프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푸틴의 ‘대(大)러시아주의’가 그 실제 사례들이다. 약육강식 강대국 외교와 국가 간 합종연횡이 한반도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경고처럼 당위에 매몰돼 현실을 경시하면 ‘자신의 보존보다 파멸을 훨씬 빠르게 배운다’. 한반도 현실의 바탕은 새롭게 고도화한 한미동맹에 기초한다. 보편 규범이 붕괴한 21세기에도 자강 한국과 동행하는 한미동맹은 그레이트 게임을 헤쳐 나갈 최대 자산이다. 미국이 상실해 버린 최첨단 선박 양산 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서방 진영 국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한미동맹 고도화에 결정적이다. 한국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제안에 미국이 감탄한 건 우연이 아니다. 쇠락하는 ‘해양 제국 미국’의 패권을 되살릴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가 막강한 한국 조선업이기 때문이다.
1905년 고종은 당시 미 대통령의 장녀 앨리스 루스벨트를 국빈 초청했다. 위풍당당한 미 전함을 타고 입항한 앨리스를 극진히 대접해 미국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한말 조야는 나라의 운명을 규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무지한 채 미국 철선의 위용만 우러러봤다. 같은 해 조선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만다.
대한민국은 조선 왕조와는 차원이 다른 민주공화국이자 선진 강국이다. 인류 문명과 생산력의 중추가 아시아로 이동하는 태평양 시대의 핵심 국가가 한국이다. ‘이재명·트럼프 회담’이 역동적 태평양 시대의 물꼬를 열기 바란다. 자강하는 국가이자 강력한 동맹을 지닌 나라만이 ‘국익에 입각한 실용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 한미동맹 현대화와 고도화야말로 곧 자강 한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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