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법치가 무너진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제닛 옐런 전 미 재무장관)
“8월 1일은 미 국채 시장이 사망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데이터를 믿을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빌 블레인 영국 경제비평가)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고용 통계가 조작됐다며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장을 전격 해임하자, 경제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이다. 미 노동부가 5, 6월 비농업부문 일자리 수 증가 폭이 기존 발표보다 25만8000명 줄었다고 정정해 시장 불안이 확산되자, 극약 처분을 내린 것. 미국에서 유례가 없는 대통령의 통계 담당자 해임은 고관세 정책을 둘러싸고 국내외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트럼프의 불안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트럼프의 ‘해임 공세’는 급기야 민간 기업에까지 마수를 뻗었다. 그는 12일 트루스소셜에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해 “데이비드는 새 이코노미스트를 고용하거나, 아니면 (취미인) DJ 활동에 집중하고 대형 금융기관 경영엔 신경 쓰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직격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고관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 소비자의 관세 비용 부담 비중이 67%로 높아질 거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해임 압박 후에도 방송에 나와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의 지갑에 타격을 주기 시작할 것”이라며 기존 전망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직까지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예상보다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2.7%로 전문가 전망치(2.8%)를 밑돌았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7월 3.3%(전년 대비)로 전문가 전망치(2.5%)를 크게 웃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의 관세 부담이 누적되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이를 전가할 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코스트코, 타깃 등 주요 유통업체들이 올 초 확보한 재고가 소진되면서 가격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중국산 비중이 높은 장난감 값(4∼6월 기준)은 1년 전보다 3.2% 올랐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예측불허 경제 정책이 시장이 가장 기피하는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에 중국 수출 허가를 조건으로 15%의 수출세를 걷거나, 통계 담당자를 해임하고, 인텔 CEO 사임을 요구하는 등 트럼프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발 경제 충격이 커지면 미국이 관세율 재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와 유예를 오가며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란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장난감 등 일부 품목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어 나중에 미국이 선택적으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등 미국과 추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 경제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며, 세율이나 투자 조건을 재협상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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