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자원’ 화재로 국가전산망 올스톱… 이게 대한민국 맞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28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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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2025.9.27. 뉴스1
2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2025.9.27. 뉴스1
정부·공공기관의 전산 시스템이 집결돼 있는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국가 주요 전산망이 ‘올스톱’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와 우체국 서비스, 모바일신분증 발급 등 정부 전산 시스템 647개가 멈춰 서면서 전국적인 혼란이 빚어졌다. 국가 전산망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보완하는 이중화(백업)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역대 정부들이 하나같이 강조해 온 ‘디지털 정부’, ‘정보기술(IT) 강국’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사이트의 접속이 끊어진 것은 26일 오후 8시 15분경 대전에 있는 국정자원 본원의 5층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다. 전기설비 교체 작업 중 리튬배터리에서 불이 붙었다고 한다. 화재는 22시간 만인 27일 오후 6시쯤 완전히 진화됐지만 5층 전산실에 있던 전산장비 740대가 전소됐다. 시스템 보호를 위해 화재의 직접 영향을 받지 않은 3000여 대의 장비들까지 셧다운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국민이 직접 이용하는 정부 온라인 서비스 436개를 비롯해 공무원 업무용 내부 행정망 211개가 일제히 ‘먹통’이 돼 주말 내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부동산 매매·전월세 계약의 온라인 신고가 막혔고, 모바일 신분증을 사용할 수 없어 공항이나 병원에서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은행권의 비대면 계좌 개설이나 일부 대출 심사 등이 차질을 빚었으며 119의 위치 추적 기능과 교통 범칙금 납부 등도 중단됐다. 우체국 금융뿐만 아니라 우편·택배 서비스까지 마비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물류 대란이 우려된다.

대전 본원과 광주·대구 분원을 둔 국정자원은 중앙·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의 IT 시스템을 통합 운영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화재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른 지역 센터에서 시스템을 이어받아 가동하는 백업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 3년 전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서버 분산, 실시간 백업 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강도 높게 요구해 놓고는 정작 국가 전산망 관리는 손놓고 있었던 셈이다. 국정자원의 자동 백업 시스템은 시험 가동 중이고 충남 공주의 백업서버센터 개소는 예산 문제로 연기됐다고 한다.

정부는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전산 시스템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전산망 장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완전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국가 안보와 행정 신뢰 측면에서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2년 전에도 국정자원의 네트워크 장비 이상으로 행정 전산망이 마비된 적이 있는데, 땜질 처방만 하다가 사태를 키운 꼴이 됐다. 정부는 국가 전산망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포함한 위기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국정자원 한 층이 불났다고 대한민국 행정이 올스톱되는 현실에선 ‘디지털 정부’ ‘IT 강국’을 운운하는 것조차 낯뜨거운 일이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전산망 장애#화재 사고#정부24#백업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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